임오군란과 관련해 궁금한 게 있어요~
신식군대 별기군과 구식군대인 무위영, 장어영 사이에서 차별때문에 일어난 임오군란은 각 진영별로 왜 차별을 두게 된것인가요? 그리고 각 군대별로 포진된 병사 수는 어느정도 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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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물포조약은 일본이 일본공사관에서 일어난 피해에 대한 배상과 사죄를 요구하고 일본공사관의 안전을 이유로 일본군의 주둔을 허용하고 주둔비용도 조선이 부담하게 하여 이후 갑신정변(1884년) 때 급진개화파가 일본군을 동원하는데 이용되기도 했다.
2. 수호조규속약에서는 간행이정을 50리로 늘리고 차후 100리로 늘리기로 했다.
# 결국 임오군란으로 조선에서는 청의 내정간섭이 심해졌고, 조선 내에서는 급진개화파가 청의 내정간섭과 개화정책의 지지부진으로 갑신정변이 일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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