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태종 이방원은 왕실의 간택제도를 왜 도입을 하게 된건가요?
태종 이방원이 조선 왕실의 특유의 간택제도를 도입했다고 들었습니다.
드라마등을 통하여 간택제도의 여러 과정이 나오는데요. 당시 태종은 왜 간택제도를 도입하게된것인지 이유가 궁금합니다
2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간택제도는 태종이 서녀인 정신옹주를 시집보내기 위한 사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때 태종이 춘천 부사 이속(李續)에게 감찰을 보내어 혼인의사를 밝혔는데, 이속은 '내 아들을 몸종의 딸에게 장가보낼 순 없다.'며 달가워하지 않으며 짚신 짜는 데는 지푸라기가 제격이라고 말함으로써 혼인을 거절하는 의사를 보냈는데, 이에 태종은 크게 노하여 이속을 곤장 100대 후 서인으로 강등하였습니다.
이후 국혼(國婚)에는 후보자의 단자(單子:名單)를 수집하여 직접 간택하도록 하는 것을 제도로 정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간택전에 중매를 통해 혼인 의사를 전하고 상대 가문의 의사를 들은 후 혼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태종의 서녀인 정신옹주를 시집보낼 때 이속이라는 남자의 가문에 혼인 의사를 전달, 이속이 정신옹주의 어머니의 출신을 트집잡은 것이 문제가 됩니다.
정신옹주의 어머니는 신빈 신씨, 원경왕후의 몸종이었는데 이 출신을 문제 잡았고, 태종은 분노하며 이속에게 곤장 100대를 내린 후 서인으로 강등합니다.
이후 태종은 새로운 제도를 만들라는 명을 내리고 , 조선의 간택제도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