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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이후에 땅주인은 어떻게 알았나요?

일제강점기 때는 땅을 다 빼앗겼을 텐데요. 나중에 광복 이후에 땅주인은 어떻게 찾아준 건가요? 주인 없는 땅을 그 이후에 산 건가요? 궁금합니다.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그 시기에는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의 땅을 잃고 고통받았죠. 광복 이후 땅의 소유권 회복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이 있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일제에 의해 빼앗긴 땅을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한 법적 절차를 마련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각종 기록과 증거를 바탕으로 소유주를 찾아내려 했죠. 예를 들어 농지개혁과 같은 정책이 시행되면서 소작농들이 직접 소유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습니다.

    또한 주인이 없는 땅에 대해서는 정부가 관리하게 되었고 이후 이러한 땅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분배되거나 경매를 통해 팔리기도 했습니다

  • 근대화라는 말은 조선말기에 서양인들 즉, 서양인 선교사들은 사용되지 않던 말입니다. 서양인 선교사들 (기독교, 카톨릭 선교사)는 문명과 반문명 그리고 미개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상하죠. 근대화 이 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누가 근대화라는 말을 썼을까? 무엇이 근대화인가?

    조선시대 말, 일본과 청나라, 러시아가 조선을 두고 자신의 지배 아래에 두고자 할 때, 서양인 선교사들은 조선에 와서 조선인들의 나라가 독립국가로 존속해서 발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조선이 특정한 나라에 속해서 지배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조선인들이 서양식 학문을 배워 서양화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서양인 선교사들은 당시에 사용한 단어가 문명(civilization)이었습니다. 당시에 문명, 문명화라는 것은 서양의 제도를 얼마나 많이 받아 들이느냐에 따라서 결정이 되었죠. 서양인들의 눈에는 조선은 반문명국가였고, 일본은 문명국가였습니다. 일본이 더 일찍 서양화가 되었기에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결과 일본에 강제로 합병된 조선은 이제 문명화된 일본에 의해서 반문명 수준인 조선이 문명화가 될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문명이라는 말은 구한말 시기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인식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들은 조선이 문명국이냐, 미개국이냐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조선은 이미 문명국이었고 일본이 조선 보다 더 문명국이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개화, 개항이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근대, 근대화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