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조선 정조13)사도세자 무덤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으로 옮기게 됩니다. 정조는 즉위하자 정치적 개혁과 학문 정치의 명분을 내세우고 규장각을 세워 청론을 중심으로 인재를 모아 자신의 친위세력을 키워나갑니다. 그리고 서서히 군권을 장악해 장용영을 발족시켜 친위 군사 기반을 갖춥니다. 정조는 이런 기반 위에서 영의정 이장을 시켜 사도세자 추승사업을 본격화하기 시작 사도세자를 장헌으로 추존했다가 장조로 추존합니다. 1789년 7월 영조의 부마로 정조의 고모부였던 박명원의 제안에 따라 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겨 쓸 것을 결정합니다. 이에 영조의 둘째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는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 화산으로 옮겨져 8월 9일 현릉원으로 확정되고 10월 4일에 정조가 영우원에 나가 무덤을 열고 친히 염을 다시합니다. 정조는 장조의 묘에 정성을 다하고 어떤 묘보다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정성을 다 쏟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