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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천사1004
Jy천사100423.12.09

광해군의 대동법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조선 중기 후기에 광해군이 임금이었을때 대동법을 시행했다고 하는데요 이 대동법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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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공물제도는 각 지방에서 생산되는 특산물을 바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생산에 차질이 생기거나 자연재해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경우에도 반드시 특산물로 공물을 바쳐야만 했습니다. 공물의 이런 폐단을 이용한 관리나 상인이 백성을 대신하여 공물(특산물)을 나라에 바치고 그 대가를 몇배씩 가중하여 백성에게 받아내는 방납이라는이라는 제도가 있어 백성의 부담이 한층 가중되었습니다. 이러한 폐단을 막고자 공물을 쌀로 통일해서 받게 하였는데, 이것이 대동법입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조세 가운데 가장 백성들에게 고통을 가져다 준 것이 지역 특산물을 납부하는 공납입니다. 게다가 방납의 폐단으로 백성들은 더욱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공납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광조, 이이 등이 수미법을 주장하는 등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은 공납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1608년 처음으로 경기도에 한해 대동법을 시행했습니다. 먼저 수취 기준을 가구(호)에서 토지로 바꾸었습니다. 즉 공납의 전세화입니다. 광해군은 토지 1결당 쌀 12두를 거두게 하였으며, 이후 실시 지역이 확대되면서 옷감(삼베, 무명), 동전도 납부 가능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동법의 시행에 대해 지주, 방납업자 등이 반발하게 되면서 전국적인 확대가 어려웠으며, 숙종 때가 되어야 잉류지역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시행됩니다. 대동법의 시행은 정부한 필요한 물품으로 쌀로 거두면서 필요한 상품을 구매하는 공인이 대두하였으며, 이로써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광해군 대는 선조 대의 논의가 실천의 영역으로 첫 발을 들인 단계로 1608년 선혜청이 설치되어 대동법이 실시되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광해군 대의 경기선혜법은 서울로 올리는 공물에 한해 대동법의 형식으로 거두어들이는 경대동 입니다.

    이는 시행처인 경기 지방의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나 방납의 폐단을 완전히 뿌리뽑지는 못했고 시행 초 답게 거센 반발에 부딪쳤으며 시행 과정에서 여러 진통을 겪었습니다.

    광해군 즉위년 5월 영의정인 이원익의 건의로 선혜청이 설치되고 다음해 봄부터 경기선혜법의 실시가 결정됩니다.

    이때 경기선혜법은 후에 이원익이 이후 인조에게 말했듯 방납의 폐단을 제거하고 부역을 고르게 하려는 뜻을 가졌으며 이원익은 조선 후기 경세론의 원조인 율곡 이이가 황해감사로 있을 당시 종사관으로서 그 아래 실무를 담당하며 수미법의 시행 경험이 있었도 지방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사대동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이러한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내어놓고 실시할수 있었습니다. 광해군이 처음 경기에 시행했을 시 선혜법으로 지칭했으나 이후 대동법이 보편적인 지칭으로 바뀌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금이 지역마다 특산물이 정정해져있어

    오늘날로 따지면 제주도는 귤 영광이면 굴비 이런식 이었습니다.


    하지만 매년 특산물이 생산되지 않을 수도 있었죠

    그러면 다른지역에서 사서 바치던지 이런식으로 엄청난 번거로움이 있었습니다.

    이걸 대신 내주는게 방납이라고 하였지만

    방납도 폐단이 심해져서 많은 돈을 요구 하였습니다.

    그래서 광해군은 대동법을 시행하여서 쌀로 통일시켜 백성들에게 세금 납부를 편하게 하게 해주었습니다.이것이 대동법 입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동법은 지방 특산물이 아닌 쌀로만 세금을 내도록 하는 제도를

    말하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