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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한사발
숭늉한사발23.03.11

대부분의 절은 왜 산속에 있나요?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절들은 산속에 위치하고 있어 종교로써의 접근성이 아무래도 떨어질텐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종교의 특성인지 아니면 외적인 영향이 있었는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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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1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11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절이 산에 있는 이유 조선왕조의 승유억불 정책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성계 정도전을 비롯한 조선의 집권층은 중앙집권적 체제 강화를 위해 사찰과 스님들을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절 땅을 몰수해 세수(稅收)를 비약적으로 증장시켰고, 승려의 대량 환속 조치로 군역을 충당할 머릿수를 대폭 늘렸습니다. 3대 임금 태종은 242개의 사찰만 남겨두고 모조리 없앴습니다. 빈털터리에 천민 대접을 받는 스님들은 백성들의 눈에 띄는 곳에 남아날 수가 없었습니다. 극소수의 원찰을 제외하고는 모든 절이 산 속으로 숨어들어 무속과 함께 연명했습니다. 그러나 기어이 살아남은 절들은 유서 깊은 기도도량으로 오늘날까지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것이죠.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절이 산으로 간 이유는 숭유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불교를 탄압하여 절로 숨어 들어간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을 채택했지요. 유교는 장려되고 불고를 억압했는데,

    승려들의 재산을 몰수 하고, 스님들을 돌아 다니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어쩔수 없이 절과 승력들은 나라의 간섭을 덜 받는 산속으로 피해 들어갔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르렀다고 보시면 될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사찰이 산에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조선왕조의 승유억불 정책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산지형 사찰이 가장 보편적입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우선 탈속주의와 풍수지리설의 영향 때문입니다. 앞서 밝혔듯 산악신앙이 유행하기에 알맞은 지리적 조건입니다. 국토의 시원지를 백두산으로 삼았고 조상들은 산신이 나라를 지켜준다는 믿음이 강했습니다. 곤란에 처하거나 가뭄이 들면 산신에게 운명을 맡겼습니다. 금강산의 봉우리들이 불보살의 이름으로 장식된 사실에서도 산악신앙의 강렬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세속권력과의 거리를 두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습니다. 신라 말 선승의 결집을 이룬 구산선문은 말 그대로 산문(山門)입니다. 수도였던 경주와 일정하게 떨어져 제도권의 귀족적 불교에 저항했습니다. 수행과 청빈으로 일관한 삶으로 민중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풍수지리학을 국내에 도입한 도선국사의 산천비보설(山川裨補說)은 산악신앙에 이론적 풍성함을 더했습니다. 산천비보설이란 기력이 쇠진한 땅에 일종의 ‘보약’을 먹여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일을 가리킵니다. 풍수학적 관점에서 산은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지리쇠왕설(地理衰旺說) 산천순역설(山川順逆說) 역시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도선국사는 지형이나 지세는 국가와 개인의 길흉화복을 좌우할 만큼 매우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인체에 뜸을 놓듯이 기운을 북돋워야 할 산에 절과 탑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막강한 후견인이었던 고려 태조 왕건이 이를 충실히 실천했습니다.

    물론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조선왕조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이었습니다. 이성계 정도전을 비롯한 조선의 집권층은 중앙집권적 체제 강화를 위해 사찰과 스님들을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절 땅을 몰수해 세수(稅收)를 비약적으로 증장시켰고, 승려의 대량 환속 조치로 군역을 충당할 머릿수를 대폭 늘렸습니다. 3대 임금 태종은 242개의 사찰만 남겨두고 모조리 없앴습니다. 빈털터리에 천민 대접을 받는 스님들은 백성들의 눈에 띄는 곳에 남아날 수가 없었습니다. 극소수의 원찰을 제외하고는 모든 절이 산 속으로 숨어들어 무속과 함께 연명했습니다. 그러나 기어이 살아남은 절들은 유서 깊은 기도도량으로 오늘날까지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그러고 보니 절들이 주로 산에 자리잡고 있지요. 우리나라에는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절들이 많이 있는데요. 말씀하신대로 접근성을 위해서라면 도시에 있어야 좋을텐데 굳이 산속에 있게 된 이유는 옛날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불교가 융성하던 예전에는 도심에도 절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여 백성들과 왕족 귀족들이 가까운 절에 자주 찾아갈수 있었는데요. 조선시대가 시작되면서 유교가 자리잡게 되고 유교를 숭상해야하지 불교는 배척하게 되면서 도심에 있던 절들은 남아나지 않게되고 양반들의 집으로 개조되었다고 해요. 결국 접근이 어려운 산속의 절들만 남게된것이죠.

    이후엔 명상과 수행을 지향하는 불교의 습성과 맞아 떨어져 산속의 절이 유지되어 온것 아닐까요?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탁발에 의지하면서 세속속에 자리잡으며 백성들에게 불교를 알리고 포교를 함을 바라셨기에 원래는 절이 도시 있는걸 지향하며 선을 행하길 지향했던것을 돌아보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도 현대들어서는 다시 교통이 좋아져 산속의 절의 접근성도 좋아진 편이라고 할수있습니다 ^^


  •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불교가 처음 들어온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까지는

    사찰이 도심 한가운데 있었어요. 특별한 곳은 물론

    예외적으로 수도승을 위해 산 좋고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백성들 가까이 있었답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억불숭유(불교를 억제하고 유교를 숭상하는)정책으로 불교에 대한 핍박으로

    도성 안에 절을 건축 못하게 되자 산으로 들어가게

    된 이유가 된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는 절이 산속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산악신앙의 영향을 받은것이 사실이지만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이 직접적 원인이라고 합니다.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45188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불교의 가르침은 불자가 개인적인 참선을 통해서 개인의 해탈을 이루어 갈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개인 적인 해탈을 이루려면 조용하게 본인의 참선을 통해서 이루어야 하는데 그럴 만한 장소가 산속이 제일 좋은 곳 입니다. 만일 시내 근처에 불당이 있다면 개인적인 첨선을 이루기가 어렵겠지요. 그래서 대부분의 절들은 산속에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속세와 자신들을 단절시키기 위함이였습니다.

    이후에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을 받으며 산 쪽으로 더욱 집중되었고요.

    이후 돈을 밝히는 승려들이 생겨나 도시 안에 절을 세우기도 했지만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절이 주로 산속에 있게 된 것은 산이 조용하고, 수행을 하기 좋은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각종 소음이 들리는 도심이나 마을에서 사회의 모든 향락을 뿌리친 채 자신을 갈고 닦는 공부를 하기란 쉬운것이 아니니,

    자신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이 주 목적인 불교수행에 있어 현실적으로 세속과 멀리 떨어진 조용한 곳이라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한국의 대부분의 절들이 산속에 위치해 있음은 종교적 특성과 외적인 영향 모두가 작용한 결과입니다.

    한국에서의 종교는 동양 종교와 유럽 종교가 모두 혼합되어 있습니다. 동양 종교에서는 자연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며, 이에 따라 산과 같은 자연환경이 종교적 경험과 연관되는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또한, 한국 역사에서 산은 신성한 곳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산 속에 절을 세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또한, 외적인 영향도 종교의 산 속 위치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인종 갈등이 심화되면서, 절을 지어도 쉽게 파괴될 수 있는 지역에 위치시키는 것이 위험했습니다. 이에 따라, 산속에 절을 지으면 보다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산 속에 절을 지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한국의 대부분의 절들이 산속에 위치하게 된 이유는 종교의 특성과 외적인 영향 모두가 작용한 결과입니다.


  • 안녕하세요. 노인옥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를 장려하여 대부분의 절이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려가 멸망하면서 조선이 들어서게 되고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숭유억불 정책을 펴면서 대부분의 절들이 산 깊은 곳에 세워지게 되었답니다.

    제 답변이 질문자님께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에 의해 불교가 탄압을 받음에 따라 대부분의 절들이 산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라 보시면 됩니다. 즉, 우리나라 마지막 왕조가 조선이 아닌 고려였다면 대부분의 절들이 산이 아닌 평지에 존재했을 것입니다.

    - - - 추가적으로 궁금하신 점은 의견으로 남겨주시면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성의껏 답변을 드려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 -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통일신라 하대에 들어온 선종은 9산이라 하여 산속에 있었습니다. 불교는 속세를 벗어난 수행을 지향하기에 절은 산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더구나 통일신라 불교나 고려 불교는 융성하여 많은 사찰이 지어졌지만 조선이 유교국가로 불교를 탄압하는 숭유억불정책을 폈기에 많은 절들이 없어지거나 산으로 가야만 했지요. 그러한 전통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