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세 유럽의 봉건 사회가 몰락하고 있을 무렵, 프랑스는 필리프4세의 노력으로 왕권이 매우 강했는데 필리프 6세때 이르러 영국의 간섭으로 위기를 맞았습니다.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가 국왕에 오르는 것을 반대하고 에드워드 3세 자신이 프랑스 국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필리프 6세보다 프랑스 왕족의 혈통에 더 가깝다는 근거를 내세웠습니다.
필리프 6세가 왕위에 오르기 전, 프랑스를 다스리던 샤를 4세에게는 왕자가 없어 왕실에서는 샤를 4세의 사촌형제인 발루아 백작을 왕으로 올리는데 발루아 백작이 바로 필리프 6세입니다.
이때 샤를 4세의 외손자인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자신이 프랑스 국왕이 되는게 옳다며 나선겁니다.
에드워드 3세는 이 기회에 프랑스 땅을 영국에 합치고 싶어했고, 플랑드르 땅과 귀옌 지방을 탐냈고 1339년 영국의 함대가 플랑드르에 머물고 있던 프랑스 함대를 향해 대포를 쏘며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