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노량해전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도주하는 일본 함대를 추격하던 이순신은 관음포에서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면서, “싸움이 급하다. 단 한명의 조선수군도 동요되어서는 아니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가리포첨사 이영남·낙안군수 방덕룡·초계군수 이언량 흥양현감 고득장 등 명나라 수군 부총병 등자룡 역시 추격 도중 전사하였습니다. 이 때 도주하던 150여 척의 일본 함선 중 100여 척을 나포하니 겨우 50여 척의 패전선만이 도주했다고 합니다.
결국 왜교에서 봉쇄당하고 있던 고니시 군은 노량해전의 혼란을 틈타 남해도 남쪽을 지나 퇴각하여 시마즈 군과 함께 일단 부산에 집결, 그 즉시 퇴각하였으며 노량 해전을 끝으로 정유재란이 막을 내리고, 7년간의 긴 전쟁도 끝이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