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현재 역사학계에서 계백장군의 성씨는 무엇으로 보는 것이 통설인가요?
황산벌 전투로 유명한 백제의 계백 장군은 실제 '계'씨가 아니고 이름도 '백'이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역사학계에서 계백장군의 성씨는 무엇으로 보는 것이 통설인가요?
그리고 실제 사료에 의한 이름은 무엇이라 보고 있나요?
계백장군의 실제 성과 이름은 무엇이 사학계에서 통설로 인정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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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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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계백을 성명으로 간주하는 견해가 일반이지만 김정호의 대동지지 기록을 증거로 계백은 본래 흑치상지처럼 백제 왕족의 후예였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열전에서 성명이 있듯이 언급한 계백은 계백의 조상이 분봉받은 지역으로 그곳은 음운상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 잡지에 기록된 당시 개백현으로 비정되며 계백의 조상이 분봉된 지역이자 계백씨의 유래가 된 곳이라는 가설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계백의 실재 성과 이름은 <삼국사기>에 없습니다. '계백'이라는 이름 자체는 별칭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계백의 '계(階)'와 으뜸 혹은 존칭의 '백(伯)'으로 이루어져 있어 '계백'이라는 호칭 자체가 귀족 작위처럼 '달솔' 관직을 맡고 있는 인물에 대한 존칭으로 추정합니다.
조선시대에 김정호가 지은 <대동지지>에 따르면 계백은 당시 백제의 수도였던 사비성 출신이며 이름은 승(承)이고 성씨는 백제 왕실과 성인 부여씨였다고 전합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이와 같습니다. 기록이 사실이라면 계백의 본명은 '부여승(扶餘承)'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