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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큰고니27
밝은큰고니2723.06.02

백제 왕에게도 성씨가 있었나요? 백제 왕의 성씨는 무엇인가요?

신라왕의 성씨는 박씨, 석씨, 김씨이고, 고구려왕의 성씨는 고씨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백제왕의 성씨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은데 백제왕의 성씨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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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 왕의 성씨는 '부여씨' 입니다.

    이를 줄여 '여씨' 라고도 했으며 이는 동명성왕 추모와 온조왕이 부여의 왕족에게서 갈라져 나온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 중 하나이며 백제 부여씨 왕족의 후손은 부여 서씨와 의령 여씨 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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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말씀 하신 대로 고구려의 고 씨나 신라의 김 씨나 고려의 왕 씨 조선의 이 씨처럼 민족의 주류를 이루었던 나라는 정통성을 가지는 일관된 성씨를 유지하고 이어왔으나 백제는 부여씨,여씨,김씨등 일관된 왕위 계승을 이어간 게 아니라 시기에 따라 이질적인 성들이 나타나 왕위에 오르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씨가 잘 알려 지지 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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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두 가지의 건국설화(建國說話)가 실려 있습니다. 온조 중심의 설화에 의하면 온조는 고구려 건국자인 주몽(朱蒙)과 졸본왕녀(卒本王女)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그 뒤 주몽의 원자인 유리(瑠璃)가 아버지를 찾아와 태자가 되자, 형 비류(沸流)와 함께 남하해 위례(慰禮)에 정착하여 나라를 세웠고, 비류가 죽자 그를 따르던 무리들을 통합했다고 합니다. 비류 중심의 건국설화에 의하면 비류는 해부루(解夫婁)의 서손(庶孫)인 우태(優台)와 소서노(召西奴)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우태가 죽은 뒤 주몽이 졸본으로 망명해오자 소서노는 주몽에게 개가(改嫁)해 고구려 건국을 도왔으며, 그 뒤 주몽의 원자인 유리가 아버지를 찾아와 태자로 책봉되자 비류는 어머니를 모시고 무리를 이끌고 남으로 내려와 미추홀(彌鄒忽)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건국설화에 의할 때 백제를 건국한 주체집단은 부여족 계통의 유민인 것은 분명합니다. 온조집단은 처음에는 하북위례성(河北慰禮城)에 정착해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십제(十濟)’라고 하였습니다. 이후 십제는 미추홀(현 인천광역시 일대)의 비류계 세력과 연맹을 형성했습니다. 비류와 온조가 형제라고 하는 시조 형제설화(兄弟說話)는 두 집단이 연맹을 형성한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형제설화에서 비류가 형으로 나오는 것은 연맹 초기에 비류계가 주도권을 장악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비류가 죽자 그를 따르든 무리들이 온조에게 귀부했다는 것은 그 후 어느 시기에 온조계가 연맹장의 지위를 차지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시기는 초고왕(肖古王)입니다. 초고왕은 정치의 중심지를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으로 옮기고 국호를 ‘백제’로 개칭하였습니다. 이후 백제의 왕계는 온조계의 부여씨(扶餘氏)로 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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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여씨(扶餘氏)는 백제의 국성이다. 온조왕을 시조로 하고 스스로 고구려와 같이 부여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삼국유사》에서는 초기 백제 왕족의 성씨를 해씨(解氏)라고 밝히고 있고, 고이왕과 그의 자손인 책계왕, 분서왕, 계왕 등은 우씨(優氏)였다는 견해가 있어 백제 왕족이 전 시대에 걸쳐 부여씨를 성씨로 삼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백제의 왕위가 맏아들로 이어지게 된 것은 고이왕에서 근초고왕 사이의 어느 시기였을 것이고, 부여씨는 백제 후기에 자칭하여 붙인 것일 수 있다. 왕이 성씨를 만들거나 바꾼 시점에서 그 선조들의 성씨와 휘도 다시 정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온조왕과 비류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조금씩 다른데, 성씨 역시 해씨, 우씨 등으로 다르다. 여기서 해씨는 부여의 해부루왕을 자신의 조상으로 내세우는 주장이고, 우씨는 소서노의 첫 남편 우태의 자손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온조와 비류가 형제 지간이 아니라 한성과 미추홀을 거점으로 한 서로 다른 세력이었음을 암시한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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