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과거시험도 컨닝이라는게있었나요?
옛날 과거시험볼때 탁트인 야외에서 붓으로 시험봤을텐데 그때당시에도 컨닝이 가능했었나요? 펜도없을텐데 가능했다라고하면 어떤방식으로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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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도 현대와같은 컨닝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시험을 합격하게되면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과거시험을 통과하려는 노력도 엄청났습니다. 그래서 옷에 적어두거나, 종이에 적이 숨기는 방법도 사용했고, 심지어 숙종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한 여인이 성균관 앞에서 나물을 캐다가 노끈을 발견하게되었는데, 그 노끈이 대나무 통과 이어져 과거 시험장인 성균관 반수당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처럼 대나무 통을 땅에 매설한 다음에 통속에 노끈을 넣고, 과거장에서 시험 문제를 노끈에 매달아 신호를 보내면, 바깥에 있던 동조자가 줄을 당녀 시험 문제를 확인한 뒤 답안지를 작성해 노끈에 다시 묶어 보내는 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있었습니다.
과거시험장에서는 시험감독관이 열개의 도장을 가지고 다니며 컨닝이나 예비컨닝행위를 발견하면 그 수법에 따라 각기 다른 도장을 대호지에 찍어 급락 판정에 참작하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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