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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유난히도 밝은...
별이 유난히도 밝은...22.11.16

고구려 멸망후 유민들 그리고 피지배계층인 말갈인들과 발해를 세운후 해동성국을 이루다가 의문의 멸망을 하게된 원인은 무엇인지요?

고구려 멸망후 뒤를이어 발해가건국 되는과정에서 지배계 고구려 피지배계 말갈인 연합체가 이백여년을 큰국가를 이루다가

갑자기 해동성국의 지위를 잃어버린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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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진국 발해는 고구려인이 지배계층이고 말갈인은 피지배계층이었다는 것은 고구려의 장수였던 대조영이 주축이 되어 세운 국가이기 때문에 대조영이 왕으로 추대되어 왕족이 되었기에 그렇게 보는 것이지 사실은 그렇지 않고 여러 민족들을 골고루 천거하였습니다. 대진국 발해는 고구려계와 말갈계가 혼재된 구조이나 고구려계는 지배층, 말갈계는 피지배층으로 구분되어있었던 것은 아닌 것이죠.

    그리고 대진국 발해의 지배층이 고구려나 말갈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대진국 발해의 귀족은 왕족인 대씨(大氏)를 비롯하여 고씨(高氏), 장씨(張氏), 양씨(楊氏), 두씨(竇氏), 오씨(烏氏), 이씨(李氏)의 여섯 우성망족(右姓望族)이라 불리는 지배계층이 존재하였고 사실상 실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세부적으로 본다면 왕족인 대씨를 비롯하여 고, 장, 이씨는 고구려계, 오, 양씨는 말갈계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두씨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 외 하(賀), 왕(王), 임(任), 해(解),수(受), 율(聿), 배(裵), 박(朴), 최(崔)씨 등의 부여계였습니다. 따라서 대진국 발해는 고구려계, 말갈계를 비롯한 중국계, 신라계도 포함된 49개 족성(일반귀족)이 지배계층으로 있었으니 다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왕족이 고구려계인 대씨이니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고구려의 입김이 강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한 때 고구려보다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였던 대진국 발해 멸망의 원인은 3가지로 제기됩니다.

    첫번째가 다민족 국가로서 지배층 분열로 인한 내부 혼란, 두번째가 그 혼란을 틈타 거란의 침공에 대패(926년 멸망했다고 기록함)하면서 국력 쇠락했다는 것, 세번째가 백두산 화산폭발(946년)로 인한 피해로 국민의 이주 및 쇠퇴하여 자연스럽게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중국 쪽의 공식적인 기록에서는 다민족 국가로 지배층의 분열이 있었고, 그 기회에 거란이 침공하여 멸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멸망했다는 시점 이후에도 일본, 고려 등의 기록에 발해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완전 멸망한 것은 아니라 국력이 쇠퇴하여 국토가 협소해진 것이 아니었나 추측합니다. 그리고 백두산 폭발이 원인이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도 거란 침공 이후 발해가 멸망했다고 한 시기 한참 지나서 발해의 왕자가 유민들을 이끌고 고려로 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거란 침공으로 국력의 쇠퇴하였고, 백두산 폭발로 인해 지역이 살기 어렵고, 농업 부진 등으로 식량을 조달하기 어렵게 되자 많은 이들이 각기 이주하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계속 대진국이라는 국호를 먼저 붙이는 이유는 원래 대조영의 아버지인 대중상이 초대 왕이었을 때 국호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뜻으로 고려였다고 합니다. 그 이후 대조영이 왕이 되면서 국호를 진국으로 하였고, 과거 고구려처럼 큰 나라가 되겠다 하여 대자를 붙여 대진국이라 하였습니다. 발해라고 하는 명칭은 당시 당이 대진국을 자신들의 위성국가 정도로 폄하하며 중국 동쪽의 바다의 이름이자 지역인 발해군을 떼어다가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봉호를 내리면서, 당시 가장 막강한 세력이었던 당의 중심으로 사고하던 주변 국가들도 대진국을 발해라고 불렀기에 정식 국호인 것으로 치부되었으나, 대진국이 맞다고 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대진국도 발해라는 국호도 받아들인 것으로 판단되기에 대진국 발해라고 쓰는 것이 맞지 않나 합니다.

    그리고 대진국은 조공국이 아니라 별도의 연호를 사용하던 황제국입니다. 중국에서 방영했던 사극드라마도 제목이 발해가 아니라 대진국으로 쓰고 있죠. 고구려나 대진국을 자신들의 역사라고 우기고 있는 중국이 공식적인 명칭인 대진국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2009년 대진국(발해)의 옛 궁궐터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중국 <신당서>에 제후국 '발해의 왕'이 거주한 상경성의 제2 궁전지는 전면이 19칸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 황제가 거주한 중국 장안성의 가장 큰 건물인 함원전은 불과 11칸이라고 합니다. 대진국 발해가 중국의 제후국이었다면, 본토 황제보다 더 큰 성에서 살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듭니다. 중국 역사에는 제후국 왕이 중국 황제가 사는 궁궐보다 더 큰 궁궐에 살았다는 기록도 전무후무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간혹 발해를 대진국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은 환단고기를 추종하는 세력이다 라고만 치부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역사에는 다양한 시각에 의한 분석과 판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해동성국의 해동은 중국 중원의 동쪽인 만주지방 및 한반도의 지역을 동쪽 바다쪽에 있다고 하여 해동이라고 불렀고, 그곳에 터전을 잡고 건국한 대진국 발해이기에 가장 왕성하게 발전했던 시기에 중국에서 대진국 발해를 해동성국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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