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후기 사회에서 서민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상처를 회복하고자 노력했지만 연이어 닥친 자연 재해와 기근, 자주 창궐하는 역병으로 또 다시 죽음의 공포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음울하고 불안하며 위기 의식이 팽배했던 당시 사회에서, 또한 기득권층에 더 이상 문제해결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장승은 기층민의 입장에서 자신들에게 닥쳐오는 죽음을 극복하고자 장승의 얼굴이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갖게 되는 토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혼란이 가중된 사회는 죽음을 암시하는 육체의 파괴를 가져왔으며 이것이 곧 기괴한 한 형상으로 도출되었다고 합니다 괴기할 정도로 과장되고 돌출된 장승의 얼굴은 인간 얼굴의 사실적인 형상을 이탈해버림으로써 기괴함과 우스꽝스러움이라는 양면성을 갖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