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물에 대한 기록 중에서도 왕족이나 궁중에서는 외모와 관련한 기록이 상당수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들은 당시의 시대적, 문화적 배경에 따라서 평가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현재의 미의 기준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백제의 후작 이사금은 "어느 신하와 대화하든, 천하의 아름다운 남자"라는 평판을 받았으며, 고려 시대의 공민왕은 "입을 보아도 사람을 가리키고 발을 보아도 사람을 가리킨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조선 시대에는 왕이 아니더라도, 문화적, 예술적인 활동에 뛰어난 인물들의 외모에 대한 기록도 종종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화랑도의 창작가인 안중근은 "얼굴이 아름다워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특정한 왕 중에서 가장 잘생겼다고 여겨지는 것은 어렵습니다. 왕족들도 외모의 평가는 주관적인 면이 많기 때문에, 현재의 미의 기준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