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신분적으로는 양반이고, 경제적으로 유일한 재화이며 생산수단인 토지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또한 문화적으로 도덕과 학문· 예술을 만들고, 보급하며 감독하는 고위 관리 또는 출세를 고대하는 예비군들이었고, 더구나 사대교린 정책을 선택했고, 자의식도 부족했으므로 임금의 한글 창제를 반대했습니다. 이들은 끝까지 한자와 한문을 고집했다고합니다
문자를 아는 것은 식자층이나 권력자의 큰 힘이었습니다. 한자는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사용해왔던 것입니다. 고구려나 백제, 신라도 한자를 사용했지요. 그러나 한자는 익히기 매우 어려운 문자입니다. 오랫동안 익히고 또 익혀야 한자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지요. 새 문자가 나오면 또 익혀야해 평생 다 완벽하게 익힐 수가 없는 그런 문자입니다.
한자는 주로 지배층이 사용해왔고 그 지배를 정당화해주는 근거가 되어왔기에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백성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언문을 만들 때 그 반대는 엄청나게 거셌지요. 양반들의 힘을 빼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 수많은 반대에도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해 우리가 그 덕을 보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반대 세력이 많았지요. 특히 중화 사상에 젖어 있는 많은 사대부들이 자신들만이 누리고 있던 언문에 대한 특혜를 잃어 버릴 까봐 두려워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집현전 학사들도 반대를 해서 최만리 같은 집현전 학사는 반대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