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연산군이 백성을 위해 한 일이 있나요?

연산군은 어머니 폐비의 억울함을 알고 나서 폭정이 더 심해졌는데 역사적으로 이 부분만 포커싱을 맞춰서 지식이 한정적인데 연산군이 왕으로서 백성을 위해 한 일이 하나도 없나요? 그리고 폐위된 후 연산군으로 강등되기 전 왕이었을 때 무슨 종?으로 불렸나요?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

    연산군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면,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이전 연산군은 총명한 왕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자신의 딸을 사주하여 죽이고 위에 보고는 자살하였다고 한 군수를 직접 심문하여 타살을 밝혀내기도 하였고, 또 학문과 예술적으로도 조예가 깊은 왕이었다고 합니다. 왕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국조보감을 속편하기도 하는 등 학문적으로 다양한 일을 행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연산군의 광증에 대한 기록이 나온건 무오사화부터 시작이며, 폭발하게 된 계기는 생모인 폐비 윤씨의 죽음과 관련된 갑자사화 이후로 보여집니다.

    태조, 세종 등의 시호는 왕의 사후 내려지는 시호이기 때문에, 살아있을 때는 따로 불리는 것 없이 조선의 왕으로 불리었습니다. 폐위 이후에도 시호는 따로 붙여지지 않았고 반정으로 물러났기 때문에 왕에서 군으로 강등되면서 현재의 연산군으로 불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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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택된 답변
  • 연산군은 폭정 이미지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집권 초기 국방, 위민 정책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왜구, 여진 침입 우려로 평안도, 함경도 방비를 강화하고, 비변사의 전신인 비용사를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왜구 대응을 위해 차안과 해안 방어에 적극적이었습니다. 궁전 주변 민가 철거 명ㄹㅇ으로 왕궁 치안을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비록 초기 업적도있었지만 폐비 윤씨 복원과정 무오사화, 갑자사화가 본격화되었으며, 그 업적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