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
연산군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면,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이전 연산군은 총명한 왕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자신의 딸을 사주하여 죽이고 위에 보고는 자살하였다고 한 군수를 직접 심문하여 타살을 밝혀내기도 하였고, 또 학문과 예술적으로도 조예가 깊은 왕이었다고 합니다. 왕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국조보감을 속편하기도 하는 등 학문적으로 다양한 일을 행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연산군의 광증에 대한 기록이 나온건 무오사화부터 시작이며, 폭발하게 된 계기는 생모인 폐비 윤씨의 죽음과 관련된 갑자사화 이후로 보여집니다.
태조, 세종 등의 시호는 왕의 사후 내려지는 시호이기 때문에, 살아있을 때는 따로 불리는 것 없이 조선의 왕으로 불리었습니다. 폐위 이후에도 시호는 따로 붙여지지 않았고 반정으로 물러났기 때문에 왕에서 군으로 강등되면서 현재의 연산군으로 불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