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음악 이미지
음악학문
음악 이미지
음악학문
친절한코끼리20
친절한코끼리2023.06.18

전통악기 가야금의 유래에 대하여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우리나라 고대시대 때 신라와 백제 사이에

가야라는 국가들이 있었는데 가야금이라는 악기가

이러한 가야의 전통악기인지 궁금하며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궁금합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18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야금의 역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야금은 한반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삼국시대 초부터 연주된 것으로 보이며, 통일신라시대에 주요 향악기로 정착하여 고려, 조선시대에 발전을 거듭하였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종류의 가야금이 연주되고 있습니다.

    가야금의 기원에 대해서는 서력기원 전후 유라시아대륙 북방에서 한반도 남부지방에 들어온 고대 현악기가 한반도의 고유 형태로 발전한 형태라는 ‘고유악기설’이 있으며, 중국 한나라의 정(쟁), 주(축) 등 치터류 악기를 개량한 것이라는 ‘중국 기원설’, 동남아시아 또는 인도의 악기가 바닷길로 전래한 것이라는 ‘해전설’이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야금의 유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가야고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가야고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가야국의 가실왕은 당나라의 악기를 보고서 가야고를 만들었다. 가실왕이 이르기를 '여러 나라의 방언이 그 성음에 있어서 서로 다르거늘 어찌 똑같을 수 있겠느냐?' 라고 하면서, 성열현(省熱縣) 사람인 악사 우륵(于勒)에게 명령하여 12곡을 짓도록 하였다.

    나중에 우륵은 가야국이 장차 어지러워질 기미가 보이자 악기를 가지고 신라의 진흥왕에게 의탁하니, 진흥왕이 우륵을 받아들여 국원(지금의 충주)에서 살도록 하였다. 그리고 곧 대나마 법지(法 知) 와 계고(階古), 대사 만덕(萬德)을 보내서 가야고를 이어받도록 하였다.

    『삼국사기』의 기록은 가야고를 가실왕이 만들었다고 전하지만, 가실왕의 연대는 알 수 없으므로 신라의 진흥왕(540∼576)때라고 미루어 짐작해 본다면, 대략 6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1974년에 경주의 황남동에서 출토된 장경호(長經壺 : 목이 긴 항아리)에 가야고를 연주하는 그림이 새겨져 있는데, 이 항아리는 신라 미추왕(262∼284) 능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장경호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가야고가 이미 3세기경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가야고의 연대를『삼국사기』보다 300년 정도 소급할 수 있게 되었다.

    가야금의 형태와 유래

    가야고는 요즘 흔히 '가야금'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가야고'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이것은 '거문고'에 '고'라는 말이 들어 있는 점과, 가야고와 비슷한 악기가 일본에서는 '고도' 라고 불리는 것이라든지, 우리 나라의 옛 기록에도 '가야고'라고 나타나는 것을 보면, 원래의 우리말 이름은 가야고였기 때문이다.

    요즘 쓰고 있는 가야고에는 풍류 가야고, 산조 가야고, 개량 가야고의 세 가지가 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야금은 6세기 초, 중엽에 활동한 서민출신의 음악가이며 작곡가, 연주가인 우륵에 의하여 새롭게 창안 제작된 우리나라의 특색 있는 민족현악기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다음에 세워진 가야라는 나라에서 나왔다고 하여 ‘가야금’이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야금 (조선향토대백과, 2008., 평화문제연구소)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야금의 기원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가야국의 가실왕이 6세기에 당나라의 악기를 보고 만들었으며, 우륵(于勒)에게 명하여 12곡을 지었는데, 그 뒤 가야국이 어지러워지자 우륵은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 진흥왕에게로 투항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4세기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의 토우(土偶)에서 가야금이 발견되고, 중국의 『삼국지』 중 위지 동이전에 삼한시대에 이미 한국 고유의 현악기가 있었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 등으로 미루어, 가야금은 삼한시대부터 사용된 민족 고유의 현악기가 가실왕 때 중국의 쟁(箏)의 영향을 받아 더욱 발전했다는 것이 오늘날 국악학계의 통설이다.


    진흥왕 이후 가야금은 신라에 널리 퍼져 그 곡수가 185곡에 이르렀다고 하며,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궁정과 민간에서 크게 애호되었다. 19세기 말 김창조(金昌祖)에 의해 가야금산조가 창시되면서, 전통적인 가야금, 즉 법금보다 빠르고 다양한 산조 기교에 적합한 소형의 산조가야금이 만들어져 널리 보급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