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때는 불교가 국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에 또 유교가 정치이념으로 기능하였고, 도교와 풍수지리·도참사상 등도 유행하였습니다. 고려시대의 사상계는 이처럼 복합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각 사상 사이에서, 혹은 하나의 사상 내에서도 종파간에 대립과 융합, 또는 영향을 미치고 받으면서 공존하였던 것입니다.
이들 중에서 사회에 끼친 영향이 한층 큰 것은 불교였으며 다음이 유교였습니다. 그 가운데 불교는 국초에 소의경전을 주로 하는 교종이 여전히 교세를 이어가는 한편으로 개인주의적인 좌선을 표방하고 나선 선종이 호족과 연결을 가지면서 번성하여 양립하는 형세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광종조에 오면 왕권의 상대적인 안정과 더불어 교종이 선종보다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데, 그 중심이 된 종파는 화엄종이었으며 이를 지도한 승려는 균여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선종은 중국에서 새로이 도입된 법안종을 중심으로 정리가 되거니와, 승과가 설치되는 것도 바로 이때였습니다.
그 뒤 문벌귀족사회가 형성되면서는 교종인 법상종과 화엄종이 불교계의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이 가운데 법상종은 국왕인 현종의 지원을 받은 위에 고려 최대의 문벌외척세력인 경원이씨와 깊은 관련을 맺으면서 번성하였고, 화엄종은 왕자 출신인 의천이 나오면서 절정을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의천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새로이 천태종을 개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