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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26

고려후기 건축양식인 다포식 건물의 대표적인 건물은 어떤게 있는지요?

고려 후기에는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다포식 건물이 등장하여 조선시대 건축에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데요. 주심포, 다포, 익공등의 건축양식이 있다고 하던데 그당시 다포식의 대표적 건물에는 어떤게 있는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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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굉장한비오리121
    굉장한비오리12123.06.26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초기에 사용된 대표적인 주심포 양식 건물은 무위사 극락전(국보 제 13호, 15세가), 봉정사 대웅전(국보 제 311호), 아산 맹씨 행단(사적 109호)등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초기를 제외하고는 널리 사용된 대표적인 다포식 양식 건물로 국보 제 1호 숭례문을 들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익공식 공포는 주로 향교나 서원에 서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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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걸고 그 위에 포작(包作)을 짜올리는 형식이다. 우리 나라 목조건축양식 중에서 가장 장중하고 복잡한 구조와 형식을 가지는 것으로 중국에서 전래되었다.


    중국에서는 요대(遼代)부터 다포양식이 사용되기 시작하여 송·원대는 일반적인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송대는 ≪영조법식 營造法式≫이라는 건축기법에 관한 서적이 발간되어 다포계 형식의 규범을 만들었다. 일본에서도 이른바 ‘쓰메구미(詰組)’라고 하여, ‘가라요(唐樣)’ 또는 ‘젠슈요(禪宗樣)’의 건축이 이루어졌던 가마쿠라(鎌倉)시대에 다포양식이 많이 사용되었다.


    우리 나라에서 이러한 형식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현존하는 목조건축 자료를 통하여 그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의 건축 이외에도 다포양식의 채용을 알려 주는 몇 가지 자료가 남아 있어 주목되고 있다.


    우선, 신라 말 또는 고려 초의 공예품으로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금동불감(金銅佛龕)은 공간포의 구조형식을 가지는 목조건조물을 묘사한 최초의 예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당나라의 공래반타사우변상도(卭崍盤陀寺右變相圖)에서와 같이, 평방 없이 창방에 전형화된 다포계 양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 고려시대의 관경변상도(觀經變相圖, 1323, 일본 知恩院 소장)는 연대가 뚜렷한 고려시대의 건축에 관한 자료인데, 여기에서는 창방 또는 평방으로 보이는 부재만 걸고 그 위에 포작을 배열한 것이 완전한 다포계양식을 표현하지는 못하였지만 주심포나 공간포의 포작을 평방 위에 배열하고 있는 것이 많아, 이 시기에는 전형적인 다포계양식이 사용되었음이 추측된다.


    이 변상도의 연대는 고려 말기이므로 북한에 있는 심원사(心源寺) 보광전(普光殿, 1374), 석왕사(釋王寺) 응진전(應眞殿, 1384) 등의 건립연대와 별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어, 이 시기에 전형적인 다포계양식이 사용되었음을 확실하게 한다.

    그런데 위에 나타난 다포계양식의 공포구조와 양식을 보면, 첨차(檐遮)의 모양이 교두형(翹頭形 : 밑면 끝을 활이나 원호모양으로 깎아낸 모양)으로서 고구려 벽화에서 나타나는 첨차에서 많은 변화가 없이 사용된 듯하나, 그 출목(出目) 수에서 내외이출목(內外二出目)·내외삼출목 등의 구조형식을 보임은 다포계양식으로서의 구조형식이 이미 많은 발전을 보이는 증거라고 할 수 있어, 전형적인 다포계양식의 시작은 적어도 고려 중기 이전으로 볼 수도 있다.


    다포계의 초기적 양식을 보여 주는 것은 위에 예시한 건물 외도 봉정사 대웅전, 성불사(成佛寺) 응진전(應眞殿), 개성 남대문, 평양보통문(普通門), 서울 남대문 등을 들 수가 있다. 이들의 특징으로는 내외출목수를 같게 한 예가 많고 첨차는 교두형으로 되어 있으나, 그 끝이 원형의 곡선이라기보다는 ≪영조법식≫의 권쇄법(卷殺法)에 따라서 모를 죽인 듯이 끝을 수직으로 깎아내려 밑에서 몇 번 곡을 두어 깎아굴렸다.


    또, 대부분의 경우 첨차 위에는 공안(栱眼)을 깎아 고식(古式)을 나타내고 있으며, 살미[山彌] 바깥 끝의 쇠서[牛舌]는 하앙재(下昻材)와 같이 밑으로 처져 끝이 무디게 잘려져 있고, 두공(頭工) 살미의 내부 끝은 교두형으로 이루어져 양봉(樑奉)의 초가지 문양을 하지 않고 있다.


    구조적으로는 기둥에 배흘림(entasis)을 두고 종보[宗樑] 위에서 ㅅ자 대공(臺工)과 파련대공(波蓮臺工) 또는 포대공(包臺工)을 쓰고 있어 주심포계에 속하는 부재(部材)를 사용하고 있다. 보의 단면도 주심포계의 것과 같이 곡을 가지게 한 것도 있다. 그러나 보통은 밑의 모서리를 굴려 원형의 곡을 이루어 상부는 평평하게 자르고 있다.


    보의 뺄목이나 한대의 끝도 정연하고 차분한 삼분두(三分頭 : 보머리·장여뺄목 등의 끝을 세번 꺾어 잘라낸 형식의 끝머리)로 깎았다. 내부 반자는 초기에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봉정사 대웅전과 같이 뒤에 반자를 단 것으로 보이는 것도 지붕은 보통 팔작지붕이 많으나, 맞배 및 우진각지붕 등 여러 구조로 사용되었다.

    다포계의 중기적인 양식의 예는 관룡사(觀龍寺) 대웅전, 통도사 대웅전, 법주사 팔상전, 쌍봉사(雙峰寺) 대웅전, 화엄사 각황전(覺皇殿), 장곡사(長谷寺) 하대웅전, 전등사 대웅전, 창경궁 명정전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의 특징으로는 공포구조에 있어서 첨차의 끝이 초기적인 것과 달리 약간씩 경사를 이루어 끊기는 것도 있고, 밑면은 원호에 가깝게 또는 기하곡선에 가깝게 깎고 있다.


    쇠서도 끝이 약간씩 날카로워질 뿐 아니라 끝을 쳐들어 위에서부터 곡이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출목수도 이출목 이상인 것이 비교적 많으며, 또 공안도 퇴화되어간다. 양봉이나 살미에 문양을 이룬 틀에는 연봉오리를 나타내는 화두자(花頭子)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가구적으로는 기둥의 배흘림이 약화된다.


    또, 보와 대공 등의 장식이 없어지고 구조적인 부재로 짜여져서 이들을 가리기 위한 반자를 두게 된다. 공포 내부에서 끊기고 보뺄목을 대신하여 한대(漢代)와 같이 익공형 또는 초가지형의 날카롭고도 화려한 문양으로 변한다.


    다포계의 후기양식으로 서울 동대문, 덕수궁 중화전, 해인사 대웅전, 신륵사(神勒寺) 대웅전 등 수많은 예를 들 수 있다. 이들의 특징은 공포의 부재가 섬세하고 장식적이며, 기둥 위에는 안초공(安初工)을 놓고 쇠서는 길게 뻗어 나약한 감을 주며, 쇠서 위에는 수서[垂舌]를 장식하고, 살미 내외의 사이에는 운공(雲工)·연봉 등 복잡한 장식을 지나치게 하고 있다.


    단, 출목수도 많아지고 내외를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또, 구조적으로는 기둥에 배흘림이 거의 없어지고 있으며, 팔작지붕의 합각부분을 크게 만들어 건물이 겉으로 보기에 지나치게 허식적이다.

    이상을 종합하면 다포계양식은 주심포계양식보다는 뒤늦게 성립 발전되어 온 것으로, 그 주요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포작은 기둥 위 주심에서만 짜올리지 않고 기둥 위에 평방(平枋)을 올려 사이에도 포작을 배치 배열하여 지붕 하중을 받게 하므로 주심포작보다 하중의 분배와 전달이 유리하다. 둘째, 창방과 평방을 같이 가설하여 그 위에 여러 단의 포작이 출목을 두어 짜므로 건물의 높이가 웅장하게 높아지고 내부공간도 커진다.


    셋째, 내부공간의 확대와 가구(架構)의 복잡성 때문에 내부에 반자를 설치하여 위의 가구가 보이지 않게 처리하는 경향이 있게 된다. 넷째, 건물을 더 웅장하게 하기 위하여 팔작지붕을 많이 쓰게 된다. 다섯째, 공포부재 이외의 많은 부재들이 규격화되어 시공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즉, 기둥의 배흘림도 약화되고 보의 단면도 항아리 입면형에서 사다리형·사각형·반원형 등으로 단순화되어 가고 첨차도 교두형으로 쓰이게 된다.


    여섯째,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된 완주화암사(花巖寺)극락전(1605)과 같은 하앙식(下昻式)의 건축구조 또한 하앙을 가지는 다포계양식의 한 예라 볼 수 있는데, 청동탑 등에서 엿보이는 하앙식으로 추정되는 것에는 주심포계의 하앙식의 구조가 많다. 하앙식 구조를 별개의 양식으로 분류할 것인가, 다포계와 주심포계에 포함시킬 것인가는 아직 논의된 바가 없다.


    하앙은 공포 위 또는 그 중간에 중도리 또는 뜬창방, 기둥 등에서 물려 밖으로 경사져 길게 빠져나와 처마도리를 받드는 부재를 가지는 구조형식을 하고 있어 처마를 길게 뻗어줄 수 있다. 화암사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서 공포의 전후면에만 평방을 돌려 배열하였는데, 공포는 제2제공(第二諸栱)까지는 일반 다포계의 건물과 같고 그 위에 하앙을 두고 있음이 특징이다.


    일곱째, 다포계의 건축에서도 공포와 공포 사이에 작은 불감형(佛龕形)의 포벽이 이루어져 여기에 불화를 그려 위엄을 높일 뿐만 아니라, 내부출목 끝 반자 밑에 또 한 단의 당골벽이 이루어져 여기에도 화반과 화반 사이에 불화벽을 이루게 되었다. 이와 같이, 다포계양식은 구조가 복잡하고 화려하여 조선시대는 주로 궁전이나 사찰건축의 주전(主殿) 등 권위적 건물에 많이 사용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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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후기에는 다포식 건물도 등장하여 조선 시대 건축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그 예로 황해도 사리원의 성불사 응진전은 고려 시대 다포식 건물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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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다포식 건축물의 고려시대 건축물로는 심원사 보광전, 석왕서 응진전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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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다포계의 초기적 양식을 보여 주는 것은 위에 예시한 건물 외도 봉정사 대웅전, 성불사(成佛寺) 응진전(應眞殿), 개성 남대문, 평양보통문(普通門), 서울 남대문 등을 들 수가 있다. 이들의 특징으로는 내외출목수를 같게 한 예가 많고 첨차는 교두형으로 되어 있으나, 그 끝이 원형의 곡선이라기보다는 ≪영조법식≫의 권쇄법(卷殺法)에 따라서 모를 죽인 듯이 끝을 수직으로 깎아내려 밑에서 몇 번 곡을 두어 깎아굴렸다.


    또, 대부분의 경우 첨차 위에는 공안(栱眼)을 깎아 고식(古式)을 나타내고 있으며, 살미[山彌] 바깥 끝의 쇠서[牛舌]는 하앙재(下昻材)와 같이 밑으로 처져 끝이 무디게 잘려져 있고, 두공(頭工) 살미의 내부 끝은 교두형으로 이루어져 양봉(樑奉)의 초가지 문양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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