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결국 황희의 인격적인 장점 떄문 입니다. 성격이 원만하여 존경받았으며, 시문에도 뛰어났고 관료생활 중 많은 치적과 일화를 남겼다. 사후 청백리로 규정되어 일반적으로는 청백리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아들과 사위가 저지른 뇌물 수수, 부패 등 물의를 빚어 조선왕조 실록에 기록되기도 했으나 세종은 그의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를 신임했다고 합니다.
실제 세종이 황희를 정치적으로 두둔해준 것에 가까운데 황희가 정승을 오래 해 당시 주변에 시기나 질투가 있었고 그에 대한 대책으로 황희가 사직서를 내면 세종이 거절하는 모습을 연출해 황희는 벼슬에 욕심이 없는데 내가 막는 것이라며 여론을 잠재운것뿐이지 정말 황희가 사직하고 싶은데 일부러 거절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