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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한타조35
클래식한타조3523.09.05

홍범도 장군논란으로 요즘 난리인데 홍범도 장군에대해서 궁금합니다

홍범도 장군이 봉오동 전투를 지휘했다는정도만 알고있는데 홍범도 장군의 업적에 대해서 궁금하고 요즘 육사에서 흉상 이전논란과 관련하여 공산당이력이 진짜 문제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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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홍범도장군은 대한독립군 사령관으로 북로군정서에 활동한 김좌진장군의 청산리대첩에 버금가는 봉 오동대첩을 이끈 인물로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의 영토에서 조선의 독립활동을 위해 헌신한 인물입니다. 레닌의 공산당에 가입은 했으나 이는 지금의 평화시기와는 다른 전쟁시기였고 나라를 빼앗겨 고통스러운 암흑기였기에 지금의 시각으로 ㄱ때를 재단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홍범도는 민족독립을 위해 애쓰신 독립투사이자 민족주의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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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홍범도는 1921년 11월 레닌을 만나러 모스크바에 간 것은 그해 6월 자유시에서 한인 부대 사이에 발생한 유혈 사태를 보고하기 위함이라고 썼다. 단순히 56명의 한인 대표 중 한 명이 아니라 자유시 사변을 보고하기 위해 갔으며, 자유시 사변은 외견상 러시아 부대가 앞장섰지만 한인 부대끼리 싸운 유혈 사태임을 밝히고 있다.

    홍범도는 자유시 사변 3개월 전 이미 무장해제를 주도한 칼란다리시빌리 부대의 한인 여단 제1대대장으로 임명됐음도 밝혔다. 홍범도나 그의 부대가 단순히 무장해제에 응한 것 이상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가능하다. 그래야 그가 자유시 사변 후 재판위원을 맡고 레닌에게 권총과 금화를 포상으로 받은 사실이 설명이 된다. 그가 포상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강제 무장해제된 사할린 부대원 2명에게 암살될 뻔한 사건은 그를 향한 원한이 팽배했음을 보여준다.

    홍범도는 1919년부터 1920년까지 빨치산 부대를 거느렸다고 썼다.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는 1920년 6월과 10월의 일이다. 두 전투에 임할 때 그의 자의식은 독립군이 아니라 빨치산이었던 것이다. 그의 빨치산 증명서에는 칼란다리시빌리 부대 편입 전부터 포함해서 1919년 9월부터 1922년 11월까지 적위군(적군을 호위하는 준군사조직)에 근무한 자라고 나온다.

    그는 1913년 일본의 수배를 받아 소련의 극동지역으로 건너왔다고 썼다. 그의 부대는 1919년 러시아 적군에게서 훈련을 받고 적군의 도움으로 무장을 강화했다. 산(山)포수였던 홍범도는 극동지역에서 1차 대전과 러시아 내전을 겪으면서 현대 무기의 위력을 실감하고 엽총으로는 일본군을 상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러시아 적군과 함께하기로 일찍이 마음먹은 것으로 보인다.

    홍범도는 자유시 사변 이후 독립영웅으로 불리기에는 수치스럽게도 다시 총을 잡지 못했다. 무장해제된 한인 부대는 교육훈련부대로 편성됐다가 해체됐다. 무장해제의 목적이 본래 그것이었으나 홍범도도 속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가 구술한 자서전이란게 남아 있는데 그 책에서 무장해제에 불만다운 불만을 토로한 적이 없다. 심지어 스탈린 치하의 강제 이주에 대해서도 그렇다. 오히려 2차 대전 때 독일이 소련에 개전하자 전쟁터로 보내달라고 나설 정도였다.

    그의 1927년 소련 공산당 가입은 형식적인 절차였을 뿐이다. 이미 1919년 무렵부터 그의 자의식 속의 새로운 조국은 소련이었다.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공부해서 공산주의자가 된 사람은 아니지만 ‘당은 개인보다 위대하며 당은 언제나 옳다’고 여긴 뼛속 깊이 공산주의자였다.

    봉오동-청산리 전투는 무장투쟁의 여명으로 착각한 황혼이었다. 일본군의 반격으로 간도의 조선인들은 무고한 학살을 당하고 독립군은 땅끝까지 쫓겨갔다. 무장해제에 응한 쪽은 영원히 총을 빼앗겼고 무장해제를 거부한 뒤 만주로 돌아온 쪽은 지리멸렬했다. 독립군이 맘 놓고 숨쉴 땅 한 자락이 없었는데도 이종찬 광복회장은 나라를 잃은 적이 없고 따라서 건국이 뭔 말이냐는 헛소리를 광복절 기념사에서 늘어놓았다.

    그는 나름 신조의 사나이였다. 다만 대한민국 현충원은 그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 국방부는 더 아니고 육사는 더욱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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