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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30

조선시대때 결혼식은 어디서 했는지 알고 싶어요

요즘 현대사에서는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하지만 조선시대 때는 예식장이 없어 결혼식을 어디서 했는지 알고 싶어요 신랑 집에서 했나요 아니면 신부 집에서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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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혼례 전에는 상견례와 정사례가 있었는데, 상견례는 상봉을 하는 것으로 신랑이 신부 집에 처음 방문하는 것이며, 정사례는 혼례 하루 전에 신랑이 신부 집에 머물면서 예식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혼례 당일에는 정갑(定甲)이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신랑의 집에서 신부의 집으로 가는 길에, 신랑이 공양(攻揚)이라는 활시위를 달고 가는 것으로, 이는 신부의 집으로 신랑의 위엄을 과시하는 의미가 있다고합니다. 혼례는 대개 저녁에 진행되었으며, 집에서의 예식, 혼례가 끝나면, 신부는 신랑과 함께 신랑의 집으로 떠나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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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리한밀잠자리144
    예리한밀잠자리14423.03.30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혼례는 신부측 집에서 진행됩니다.

    결혼 전날까지 신랑이 함을 지고 신부의 집으로 옵니다.

    그렇게 함잡이를 하고, 다음날 신부의 집에서 혼례를 치룹니다.

    혼례일은 신랑측이 괜찮은 날을 몇 개 잡아 신부집으로 보내면,신부측에서 택일을 합니다.

    혼례 전에 신부측에서 신랑측으로 예단을 보내고

    그 후 신랑측에서 예물과 혼례에 필요한 재물과 인력을 보내 혼례잔치준비를 돕습니다.

    혼례 후에는 신부측 집에서 첫날 밤을 보내고, 익일 신부친척들에게 인사를 드린 후 이바지음식과 함게 신랑의 집으로 갑니다.

    신부가 준비해 온 이바지 음식으로 새 식구가 들어온 것에 대한 조상들에게 알리는 제사를 지냅니다....

    이것을 혼례의 의식에 절차는 끝나지만 의례의 절차는 택일이전부터 제사 이후까지 많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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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혼례식의 장소는 여가,

    즉 신부의 집이었다. 신랑의 행차가 여가에

    당도하면 신랑 입장 을 알리는 전안례(奠鴈禮)를 행한 후, 대청에 마련된 대례상 앞으로

    이동하여 신랑 신부가 맞절하는 교배례(交拜禮)와 술잔을 합하여 부부가 하나되는

    합근례(合巹禮)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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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결혼식을 집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신랑집이나 신부집에서, 또는 양쪽 집 모두에서 결혼식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이때 집 안뜰을 이용하거나 가까운 산이나 강가 등 자연 환경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결혼식은 주로 정월대보름, 초복, 중복, 말복 등 특정한 날짜나 시기에 진행되었으며, 일반적으로는 오전에 하던 '단혼'과 오후에 진행하는 '복혼'으로 나뉘어졌습니다. 단혼에서는 인솔자와 함께 치마를 입고 춤을 추는 풍습이 있었고, 복혼에서는 식사와 음악, 무용 등이 펼쳐졌습니다.

    결혼식은 가족들과 친지들이 참석하여 축하하는 행사였으며,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가졌습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결혼식이 집안의 명예와 존경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졌고, 부족한 집안에서 결혼식을 제대로 치르지 못한 경우에는 출가시키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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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따로 예식장이 없었기 때문에

    신부측에서하거나 신랑측 집에서 혼례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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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결혼식을 할때 신부 집 마당에서 한다 들었습니다.

    우리전통사회에서는 며느리가 시집을 오는게아니라 사위가 장가를가서 처가에살다가 자식이크면 독립하는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런전통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거쳐 조선중기까지도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예를들어 신사임당은 결혼한지 3년이 지나서야 시어머니얼굴을 처음뵈었고 이후로도 20년가까이 친정에서 살았습니다. 또 이순신장군같은경우도 처가에서살며 무예를배우고 집도 물려받았고요. 이런 전통으로인해 조선을건국한 성리학자들은 혼례의풍속도 중국처럼 신랑이 신부를 자기집으로 데려와서 치르는 친영례를 시행하기위해 노력했지만 그것이 쉽게 고쳐지지않아 결국 절충안인 반친영제 곧 신랑이 신부집에서 결혼식을한후 사흘을 머무르고 신부를데려오는제도로 정착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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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결혼식은 일반적으로 신랑집, 즉 신부의 가족이 있는 집에서 열렸습니다. 이를 "신혼집회(新婚集會)" 또는 "임치(臨治)"라고 부릅니다.


    결혼식은 일반적으로 오전에 열렸으며, 예식이 끝난 후에는 신부와 신랑은 신랑집에 함께 살게 됩니다. 결혼식에는 주례, 예식, 교배, 식사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주례는 결혼식의 중심이 되는 의식으로, 신부와 신랑이 결혼식장에 입장할 때, 호칭과 인사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식에서는 신부와 신랑이 약혼을 나타내는 의식을 거쳤으며, 교배는 신부와 신랑이 서로 고개를 숙여 서로의 머리를 맞대는 의식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식사가 있었는데, 이는 신랑집에서 신부와 신랑이 함께 식사를 하면서 가족, 친척, 지인들과의 인사와 결혼 축하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조선시대 결혼식은 가족 중심의 소규모인 만큼, 현재와는 달리 큰 규모의 결혼식이나 호화로운 의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부와 신랑이 입는 전통복식인 한복은 깔끔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착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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