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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흑로12
빼어난흑로1223.02.26

왕건과 김춘추의 차이점에는 어떤부분들이 있나요?

왕건도 후삼국을 통일했었고,김춘추도 삼국통일을 하는데 주역인데요.김춘추는 당의 힘을 빌려서 했고

왕건은 빌리지 않고 통일을 했는데 다른 둘의 차이점이 어떠 부분들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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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그들이 건국한 나라의 성격과 방향성입니다. 왕건은 고려를 건국하여 중국의 문화와 제도를 수용하면서도 독자적인 문화를 창출하고, 국내외적으로 광범위한 외교활동을 전개하여 국력을 강화했습니다. 반면 김춘추는 신라를 토대로 백제와 가야 등 주변 국가들을 흡수하면서 신라의 문화와 제도를 계승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춘추와 왕건 모두 자신들이 속한 나라를 중심으로 삼국을 통일했지만, 그 방식과 상황은 다르기 때문에 차이점이 있습니다.

    먼저, 김춘추는 당과 연계하여 후백제와 후고구려를 정복하고, 이어서 삼한을 통일했습니다. 그는 당과 군사적, 정치적 지원을 받았으며, 당의 규율과 기술을 도입하여 자신의 군대와 정치 체계를 강화했습니다.

    반면 왕건은 고려의 국력을 강화하고 국내 정치를 안정화한 후, 고려의 군사적, 정치적 지위를 바탕으로 삼국을 통일했습니다. 왕건은 당의 도움 없이도 통일에 성공하였으며, 통일 이후에도 국내 정치와 국방을 강화하여 고려의 국력을 유지하였습니다.

    이러한 차이점으로 인해 김춘추는 후삼국 시대에 당과의 외교관계와 군사적 지원에 의존하였고, 왕건은 고려의 국력을 바탕으로 자주적으로 통일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왕건과 김춘추는 모두 통일을 이룬 위대한 장군으로 국가 수립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간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먼저, 김춘추는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신라를 정복한 후에 새로운 나라인 경주국을 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도움을 받았으며, 중국의 제도와 문화를 수용하여 경주국을 발전시켰습니다.

    반면에 왕건은 고려 건국 이전에 후백제와 신라를 병력으로 물리치고, 고려를 건국하여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왕건은 중국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통일을 이룬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왕건은 신라와 후백제의 유산을 존중하여 이들의 문화와 제도를 계승하면서도, 중국의 문화와 제도를 수용하여 고려를 발전시켰습니다.

    따라서, 김춘추와 왕건은 모두 통일을 이룬 위대한 장군이지만, 그들의 방식과 통일 이후의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발전 과정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단 김춘추와 왕건은 역경을 딛고 일어난 입지전적이 있습니다. 김춘추 이전에는 진골 출신의 왕이 없었지요. 김춘추는 의자왕의 백제의 공격으로 사위를 잃고 고구려에 도움을 청하다 죽을 뻔했습니다. 고구려에서 백제와 함께 한강유역 빼앗아간 땅을 돌려달란 요구를 했고 김춘추가 들어줄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뇌물을 주고 별주부전처럼 약속을 거짓으로 하고 빠져나왔습니다. 김춘추는 외교의 중요성을 깨닫고 당나라로 건너가 나당동맹을 성사시킵니다. 신라외교의 승리라고 볼 수 있지요. 결국 통일을 완성시키지는 못했으나 아들 법민이 나당전쟁을 승리해 통일을 완성시킵니다.

    왕건은 고려를 개창한 창업군주입니다. 그는 송악 오늘날 개성의 상인으로서 성장한 호족이었습니다. 궁예 밑으로 들어가 성장할 수 있었고 궁예의 폭정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하고 후고구려의 본거지를 송악으로 옮기지요. 왕건 역시 외교적인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강력한 라이벌인 견훤과 달리 친신라 정책을 고수해 경순왕이 백제의 시달림을 견디지 못하고 고려에 귀부하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김춘추는 김유신과 함께 중앙귀족 혹은 왕족이었던 중앙정치적 특징이 있다면 왕건은 신라의 지방에서 성장한 지방세력이었고 중앙정치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