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홍경래의 난(1811) 당시 반란군에 점령된 8개 고을(가산, 박천, 정주, 태천, 곽산, 선천, 철산, 남창, 용천) 중 5개 고을 수령은 도주하고, 2개 고을의 수령은 자발적으로 항복했습니다. 특히 감삿갓의 할아버지 선천부사 김익순은 반란군에게 관아의 문을 활짝 열어 투항하고 반란군에 합류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산군수 정시만이 저항하다 반군에 참수되었습니다.
반란이 진압되고 김익순을 참고하고 다른 수령들은 처벌에 관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조정에서도 자기들의 실책이 있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머지 수령들도 반란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극적으로 탈출하거나 진압군에 합류해 공을 세우는 식으로 벌을 받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