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혼이 발생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이 연구에서는 가능한 빨리 후사를 얻기 위해서 혼인은 서둘렀다는 점과 원나라 때 공녀로 끌려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일찍 혼인하던 풍속이 생겨났다는 점 등이 거론되었고. 그러나 조선시대에 조혼이 일반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반론이 제기되었으며, 앞으로도 논의될 여지가 있습니다.
한편, 조혼 풍속 중에는 신랑, 신부가 모두 어린 경우 외에도 성인이 된 여성과 어린 신랑이 혼인하는 사례와 신부를 어렸을 때 시가에 데려와 키워 일정한 나이가 되면 혼인시키는 민며느리의 풍습도 존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예전에는 농경 사회 였습니다. 농경 사회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수자 아무래도 많은 것이 더 좋았습니다. 그래서 하루 라도 더 빨리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아서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아버지, 나, 그리고 내아들 까지 아렇게 4대가 한집에 사는 경우도 비교적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조선시대 평균 수명이 35세 근처이고, 평균 혼인 나이가 15-20세였습니다. 평균 수명으로 보면 그렇게 빨리 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물론 이 당시 조혼의 기준은 13세 미만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국가에서 조혼에 대한 규제를 가하기도 했습니다. <세종실록>을 보면 남자는 16세, 여자는 14세 이후에 혼인할 수 있도록 했고, <경국대전>에서는 남자는 15세, 여자는 14세 이후에 혼인할 수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게다가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아이는 '총각머리'를 하고 다녔습니다. '총각하다'는 머리를 땋아서 두 뿔 모양으로 묶는 행위를 말합니다. 결혼을 빨리 하지 않으면 우스꽝스러운 머리를 하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결혼을 빨리 하는 것이 그 당시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