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광조는 과거제도부터 개혁 합니다. 지금까지의 과거가 시문에 치중하고 성리학의 경전을 도외시했다는 명분으로 천거에 의한 인재 발탁의 수단인 현량과를 설치한 것인데 조광조는 120명의 신진 사림 학자를 중종에게 천거한 것 입니다. 중종은 이들 중에서 1차로 28명을 뽑았는데 그야말로 특채인 것인데 이들은 김식, 안처겸, 박훈, 김정, 박상, 이자, 김구 등으로 모두 홍문관, 사간원, 사헌부, 승정원 등과 중종의 시종으로 발탁 됩니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조광조는 조선의 언로와 중종의 측근을 장악한 것인데 그리고 조광조는 궁중에 설치된 소격서를 미신이라 하여 폐지했고 소격서는 도교에 뿌리를 둔 것으로 전통적으로 국왕이 제례를 올리는 장소였습니다. 소격서 폐지는 조광조가 성리학을 제외한 타종교와 사상에 배타적인 것도 작용했지만 훈구파에게 사상논쟁의 선전포고를 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공신세력을 중심으로 한 훈구파는 경악했고 그들은 그동안 조광조의 개혁이 자신들의 영역을 빼앗아가는 것을 대의와 명분 면에서 저항할 수 없어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제 마지막 숨통을 조여오는 것이라 판단했고 그들은 대대적인 반격을 시도했고 조광조를 다시 몰아 내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