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시대에는 정말로 석궁이 있었나요?
오늘 드라마 [연개소문]을 보니까,
연개소문 아버지가 대장간을 시찰하는 장면에서 석궁의 위력을 시험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정말로 고구려때는 석궁이 있었나요?
있었다면,
어째서 조선시대 임진왜란 같은 때는 사용하지 않고,
보통 활만 가지고 싸웠나요?
석궁은 고대 중국에서 기원전 550년경에 만들어졌으며
사냥감을 죽이는 데 사용되었던 수평적인 보우트랩(bow trap)으로부터 발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질문자께서 말씀하신 '석궁'은 탄알이나 돌멩이를 사출물로 사용한 '탄궁'의 일종입니다.
석궁=bullet-shooting stone bow 또는 stone bow
쇠뇌, 노=cross bow
서로 모양은 비슷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에 쓰인 무기는 '쇠뇌'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쇠뇌는 삼국시대때 부터 사용되었으며
성 위에 배치하였다는 포노나 이동식 대형 쇠뇌로 여겨지는 거노 등 다양한 전투양상에 알맞은 전투무기로 개발하여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에서 비격진천뢰 등과 함께 쇠뇌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 정조가 신도시로 건설한 경기도 수원 화성에는 쇠뇌를 쏠 수 있는 누대가 따로 세워졌다고 합니다.
유럽에서 사용하던 활이나 석궁같은 무기체계는 거의 절대다수가 아시아를 통해서 건너간 것입니다. 쇠뇌를 노 또는 석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또한 이미 아시아에서는 기원전부터 사용하던 무기입니다. 보통 동아시아에서는 석궁이라고 하지 않고 노(弩)라고 많이 불렀었죠.
드라마에 나오는 고구려군 무기는 바로 그 쇠뇌입니다. 활과 다른 점은 조준 사격이 가능해서 익히는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고, 손과 발을 같이 이용해서 당기면 굉장히 강한 위력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구요. 휴대하기가 불편하고 말을 탄 채 쏘기가 힘들어서 주로 보병용이나 성의 방어무기로 많이 사용했습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쇠뇌가 나오는데 기록에 의하면 중국의 것보다 고려노(고구려 쇠뇌)가 더 사정거리가 길고 강했다고 합니다. 특히나 신라의 천보노는 천보를 날라가 적의 기마병을 박살낼 수 있었기 때문에 굉장한 위력을 떨쳤기 때문에 당태종도 탐을 냈었지만 결국 얻지를 못했다고 하죠. 쇠뇌는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임진왜란 때에도 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