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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진 삼계탕
기름진 삼계탕23.07.21

전쟁당시 보도연맹사건의 희생자들은 왜 빨갱이가 되었나요

전쟁당시 보도연맹사건의 희생자들은 왜 빨갱이가 되었나요

항의하는 유족들까지 빨갱이로 잡아갔다는 인터넷문서를 봤습니다

진주보도연맹사건 거창양민학살같은 경우도 무덤을 파헸쳤다는데 맞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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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보도연맹은 1949년 좌인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로 조직한 반공단체입니다. 정식명칭은 '국민보도연맹'입니다.

    대한민국 정부 절대 지지, 북한정권 절대 반대, 인류의 자유와 민족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 사상 배격·분쇄, 남·북로당의 파괴정책 폭로·분쇄, 민족진영 각 정당·사회단체와 협력해 총력을 결집한다는 내용을 주요 강령으로 삼았습니다.

    1949년 말에는 가입자 수가 30만 명에 달했습니다. 서울에만도 거의 2만 명에 이르렀고, 주로 사상적 낙인이 찍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였지만 거의 강제적이었으며, 지역별 할당제가 있어 사상범이 아닌 경우에도 등록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이들중에 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어쩔수 없이 동조한 사람도 있었고, 자발적으로 동조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에 이승만정부는 이들에 대한 무차별 검속(檢束)과 즉결처분을 단행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좌익에서 보면 이들은 배신자였기 때문에 인민군에 의해 살해 당한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가 아닐수 없습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21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간략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국군과 경찰, 우익 폭력단체들은 보도연맹이 북한군에 가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보도연맹 회원들을 집단 학살했다고 합니다. 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은 한국 전쟁 중인 1950년 10월부터 1951년 1월까지 이승만 정권이 좌익 전향자들을 숙청하기 위해 자행한 민간인 학살 사건입니다. 보도연맹은 1949년 6월에 이승만 정권이 좌익 전향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조직으로, 1950년 초에는 약 30만 명의 회원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