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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민트
페퍼민트22.09.26

신라시대에 여왕이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나요?

신라시대 때 여성이 나랏일을 한 것은 고구려나 백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일이라고 하는데, 신라시대 때는 총 3명의 여왕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신라가 고구려나 백제와는 분위기가 어떻게 달랐기에 여왕이 집권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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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는 골품제라는 독특한 신분제 국가였습니다. 골 층은 뼈속까지 신분이 좋은 과거 족장층으로 여겨지고 품은 그 아래였습니다. 신라는 6부족 연합국가로 탄생했는데, 왕은 박, 석, 김씨가 교대로 왕이 되었다가, 내물왕 대부터 김씨가 왕위를 세습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혈연이나 왕을 배출한 가문이더라도 후대에 가면 권력과 거리가 먼 층이 생깁니다. 이때 일종의 기준선이 생겼는데, 왕족과 왕비를 배출한 층을 성골, 즉 부모님이 모두 왕족이 성골, 한쪽만 왕족이 진골이라 불러 분화가 이뤄지고, 대대로 성골만이 왕이 되는 전통이 신라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남자 대가 끊기는 상황에서 선덕을 왕으로 앉히게 된 것입니다. 선덕여왕으로 대가 끊겨 이후로는 성골은 사라지게 되고 진골층에서 왕이 배출되게 됩니다. 이러한 시각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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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신라시대에는 골품제가 있어 성골만이 왕으로 옹립될수가 있었는데 왕이 아들이 없이 승하하여 딸이 왕위를 계승할수 밖에 없었으며 선덕여왕이 즉위한 후로는 성골이 없고 진골이 왕이 되는 일이 생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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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시대 여왕이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골품제 라는 신분제도 때문 이었습니다. 성골의 지위에 있었던 사람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는데 진평왕의 후계자 중에서는 덕만 (선덕여왕)만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뒤를 이어 마지막 성골인 승만(진덕여왕)이 왕위에 올랐지만 사후에 성골의 혈통이 끊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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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에는 골품제도가 성별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성골만 왕위에 오를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왕위에 오를 성골인 남자가 없는 상황에서 여성임에도 성골이라는 이유로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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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차하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말씀대로 신라시대에는 세 명의 여왕이 있었는데요. 바로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입니다. 신라시대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골품제도였는데요. 성골만이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성골 중에서 남자 적통이 없는 경우에는 여왕이 등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남아선호 사상보다 더 위에 있었던 것이 골품제도에서의 성골의 위치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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