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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혹한 쇠똥구리
고혹한 쇠똥구리23.06.16

우리나라 최초의 천문학자는 누구인가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나라는 천문학을 연구해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천문학자는 누구이고 시기가 언제인지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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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상현 과학전문가입니다.

    이순지는 최초로 우리나라의 천문학을 세계 수준으로 올려놓은 천문학자라고 합니다.

    세종시기에 천문역법 사업을 전담하는 책임자로 뽑혀 평생 천문학 연구에 힘을 썼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태헌 과학전문가입니다.


    김유신의 적손인 윤중의 서손 암은 천성이 총민하고 방술의 학습을 좋아하였다. 젊어서 이찬이 되어 당에 들어가 숙위하였을 때, 틈을 타서 스승을 찾아가 음양가의 술법을 배웠는데, 한 모퉁이의 것을 들으면 미루어서 세 모퉁이의 것을 연술하였다. 스스로 둔갑입성법을 지어 그 스승에게 드리니 스승이 무연한 모습으로 오군(김암)의 명달이 이 정도에까지 이르게 될 줄은 몰랐다하며 그후로는 감히 제자로 대우하지 아니하였다. 대력년간<당의 대종재위년간>에 귀국하여 '사천대박사'가 되었다.


    라고 하여 "사천대(司天臺)"라는 천문관서의 존재에 관한 언급이 있다. 오늘날에는 천문대가 과학적 영역으로서의 천체현상의 이론탐구와 법칙성의 연구, 역법의 편찬과 반포 등을 업무의 대상으로 하지만, 당시의 천문대 성격을 띠고 있던 관서는 위에 언급한 업무와 함께 점성적(占星的)인 업무도 함께 관장하였다. 여기서 '점성적'이라는 말은 자연계의 현상 중에서 비규칙적인 현상(혜성의 출현 등)들을 하늘이 인간사회에 내리는 일종의 견고(譴告)라고 해석하여 국가나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짓는 것을 의미한다. 천문관서의 업무중에는 천명사상(天命思想) 혹은 천인합일사상(天人合一思想)에 의거한 비과학적인 업무도 있었기 때문에 방술과 음양학에 뛰어났던 김암(金巖)이 당(唐)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사천대박사(司天大博士)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안녕하세요. 김학영 과학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문학자는 이원철(李源喆, 1896년 8월 19일 ~ 1963년 3월 14일)입니다.

    이원철은 국내 최초의 이학박사로 몰락한 양반 가문 출신으로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현재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고등보통학교(1910-1915년)와 선린상업고등학교를 나와, 1915년에 현재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수물과(數物科) 1회 입학생이 되었습니다. 1919년 연전 수물과를 졸업하고 1922년 1월까지 연희전문의 전임강사로 강단에서 교육 활동을 하다가 그 뒤 미국으로 유학, 1926년 미국 미시간대학(University of Michigan)에서 천문학 박사 학위를 수령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준엽 과학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문학자는 고려시대의 천문학자인 고려최초의 천문학자로 알려진 장영실(장기영)입니다. 장영실은 15세기에 활동한 과학자이며 천문학, 기구학, 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세종대왕의 명령을 받아 천문 관측 및 연구를 수행하였고, 세종실록에는 그의 관측 기록과 연구 결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영실은 세종실록에 따르면 1432년(세종 10년)에 천문 관측을 시작하였으며, 그 후 오랜 기간 동안 천문 관측과 기구학 연구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습니다. 장영실의 업적은 우리나라에서의 천문학 연구와 기구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공헌은 고려시대뿐만 아니라 이후의 조선시대에도 이어졌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경태 과학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문학자는 고려시대의 천문학자인 고종홍입니다. 그는 천문학, 수학, 지리학 등의 분야에서 활약하였으며, 중국의 천문학 서적을 번역하고, 별명과 별자리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해강별식』이라는 천문학 서적을 집필했습니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책 중 하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