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 후손들은 잘 나가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죽임을 당하거나 몰락했습니다. 도요토미 가문은 세쿠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패배하고 오사카 전투에서 도쿠가와 진에게 밀려 권력을 잃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셋째 아들 도요토미 히데노리는 오사카성에서 자살했고, 그의 아들 도요토미 쿠니오리는 도쿠가와 진에게 붙잡혀 처형당했습니다. 일부는 살아남았지만, 낮은 신분으로 연명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아즈치 · 모모야마 시대와 에도 시대에 활동한 다이묘이다.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말년에 얻은 아들이다. 히데요시가 어린 히데요리를 염려하여 가신과 전국의 다이묘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하였지만, 히데요시의 사망과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에 히데요리는 천하의 주인에서 오사카 지역의 다이묘로 세력이 약화되었다. 히데요리가 오사카로 물러난 이후에도 그의 존재가 마음에 걸렸던 이에야스는 트집을 잡아 히데요리가 거주하던 오사카 성을 공격한다. 2년에 걸친 전투 끝에 히데요리는 생모와 함께 자결하였다.
1615년 호코지 종명 사건을 빌미로 이에야스는 오사카 성을 공격, 두 번의 오사카 전투로 도요토미 가문은 멸망한다. 히데요리와 요도도노는 자살했으며 손자 쿠니마츠는 숨어 있다가 결국 사로잡혔다. 쿠니마츠는 당시 불과 7세에 불과했으나, 도요토미의 씨를 말려야 한다는 이에야스의 뜻에 따라 교토로 끌려와 살해당했고, 결국 히데요시의 대는 완전히 끊겼다. 히데요리의 서녀였던 나아히메는 센히메와 가이히메의 조명을 받아 목숨을 건졌지만 그대로 절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었기 때문에 결국 이쪽 혈통도 단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