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자세히 설명 드릴게요. 1945년에 일본이 패망할 당시 대만은 우리나라 처럼 일본의 식미지 였습니다. 해방 후에 대만에서 일본이 떠나고 대만에 들어 온 군대가 바로 중국 국민당 군대 였습니다. 당시 대만은 수십년간을 이론 식민지로 살아서 대만 사람들은 대만이 중국본토의 일부라는 사실도 몰랐고 일본어와 대만 고유어( 민난어, 핫가) 를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중국 본토어( 만달린) 를 쓰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본토 인들은 이러한 대만인들에게 중국어 사용을 강요 했고 강압적으로 모든 것을 중국식 생활에 맞추고자 했습니다. 1947년 2.28사건은 담배를 팔던 한 대만 여인을 중국 본토 경찰들이 무자비 하게 단속하며 폭행해 결국 죽게 만든 이유로 중국 본토에서 온 경찰들과 대만 인들간의 유혈 사태 입니다. 결국 4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우라나라로 따지면 광주민주화 운동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일이 종식 된 후에 1949년 중국 본토에서 국민당이 공산당에게 패해 대만섬으로 18만명이 건너 오게 되었고 1949년 중국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의 장제스 정권이 중화민국정부를 대만의 타이페이로 옮기고, 쑨원의 삼민주의를 건국이념으로 한 ‘중화민국’ 정부를 선언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