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대만의 관계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는데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공산당이 국민당을 몰아내고 1949년 10월 1일에 중화민국을 세웠고
국민당이 이후 1949년 12월에 대만으로 갔다는데,
2.28 사건은 1947년에 일어난 것이 순서에 맞지 않은 것 같아서 질문합니다.
더 정확한 답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말씀하신 사건은 국민당의 타이완으로 도주랑은 큰 관계가 없습니다.
국민당의 영토였던 타이완 섬의 시민들이 국민정부에 반대, 국민당이 시민들을 학살한 사건이 2.28사건입니다.
당시 국민당의 영토에서 일어난 일로, 국민당은 국공내전에서 패함으로 타이완섬으로 도주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자세히 설명 드릴게요. 1945년에 일본이 패망할 당시 대만은 우리나라 처럼 일본의 식미지 였습니다. 해방 후에 대만에서 일본이 떠나고 대만에 들어 온 군대가 바로 중국 국민당 군대 였습니다. 당시 대만은 수십년간을 이론 식민지로 살아서 대만 사람들은 대만이 중국본토의 일부라는 사실도 몰랐고 일본어와 대만 고유어( 민난어, 핫가) 를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중국 본토어( 만달린) 를 쓰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본토 인들은 이러한 대만인들에게 중국어 사용을 강요 했고 강압적으로 모든 것을 중국식 생활에 맞추고자 했습니다. 1947년 2.28사건은 담배를 팔던 한 대만 여인을 중국 본토 경찰들이 무자비 하게 단속하며 폭행해 결국 죽게 만든 이유로 중국 본토에서 온 경찰들과 대만 인들간의 유혈 사태 입니다. 결국 4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우라나라로 따지면 광주민주화 운동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일이 종식 된 후에 1949년 중국 본토에서 국민당이 공산당에게 패해 대만섬으로 18만명이 건너 오게 되었고 1949년 중국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의 장제스 정권이 중화민국정부를 대만의 타이페이로 옮기고, 쑨원의 삼민주의를 건국이념으로 한 ‘중화민국’ 정부를 선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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