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대 사건인 사카린밀수사건은 어떤거였나요?
1966년 바정희 정부의 묵인하에 삼성에서 대량을 사카린을 대량으로 밀수 했다고 알고 있는데 맞나요? 당시 박정희의 정치자금과도 맞물러서 당시 큰이슈가되었다고 하는데 사카린밀수사건이 뭔가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66년 5월 24일, 삼성그룹의 계열사 한국비료공업(현 롯데정밀화학. 2015년 인수)이 일본 미쓰이 그룹과 공모하여 사카린 2,259포대(약 55톤)를 건설 자재로 꾸며서 들여와 판매하려고 했다가 들통난 밀수 사건이다. 사카린 이외에도 현금화가 쉬운 일제 냉장고, 밥솥, 양변기 등 말그대로 당대 재벌 삼성그룹이 잡상인마냥 밀수를 자행하다 걸린 황당한 사건. 한비(한국비료공업) 사건이라고도 한다.
사실 사건 당시엔 묻혔는데, 몇 개월 후인 9월 15일 경향신문의 폭로로 이 사실이 드러나자 들끓는 민심에 부산 세관은 1,059포대를 압수하고 벌금 2,000만 원을 부과했다.
당시 중앙정보부의 비호하에 정권에 비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은밀한 사업이었다는 설이 있다. 삼성은 밀수한 사카린을 팔아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중에 일부를 밀수를 눈감아준 정권에 상납한다는 시나리오. 실제 이병철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씨가 1993년 출판한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당시 정권의 묵인하에 자신이 직접 진두지휘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66년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가 정부정치자금과 관련해 건설자재로 가장하여 사카린을 대량 밀수입한 사건입니다.
삼성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는 미쯔이 물산에서 상업차관을 도입하여 울산에 요소비료공장 건설을 계획합니다. 당시 이 사건에 깊숙히 관여한 이병철의 아들 이맹희의 회고에 의하면 공장건설을 정권과의 합의사항이었습니다.
1967년 대선준비에 대한 강박관념과 농촌인구가 절대적인 상황에서 비료공장 건설은 훌륭한 홍보업적으로 내세울수 있었기 때문이며 이 조건을 수락하는 대신 이병철은 국민, 정부, 언론이 비료공장 건설을 지원할 것, 정부가 책임지고 10억 원의 은행 융자를 해줄 것, 공장건설에 필요한 인허가 등을 신속히 해줄것, 공장건설과 관련하여 한 품의 정치자금도 제공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세웁니다.
미쯔이 물산과 차관교섭과 도입과정, 조건협상은 이병철이 직접 담당했고 정부는 지불보증을 서는 것으로 지원했으며 차관의 내용은 비료의 연생산량 33만톤, 외자 4200만 달러 2년 거치 8년 상환 , 이자율 연리 5.5%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비료는 차관 외 사카린 원료인 OTSA를 비롯하여 당시 금수품이었던 양변기,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등을 건설자재로 속여 대량으로 밀수, 이것을 암시장에 되팔아 엄청난 이익을 봅니다.
이 사건은 한, 일 양국의 대재벌이 밀수를 간여했다는 점에서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1966년 9월22일 김두한 의원이 국회에서 똥오줌을 던진 국회오물투척사건이 발생, 10월5일 사상계 장준하 사장은 민중당 대구 유세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밀수두목으로 규탄합니다.
이 사건과 발언의 책임을 물어 김두한, 장준하는 각각 9월 24일, 10월26일 구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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