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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파리매91
똑똑한파리매9123.02.22

고려장이란 풍습은 실제로 있었나요?

부모님을 산속에 버리는 고려장이란 풍습은 실제로 있었나요? 아니면 일본이 우리의 문화를 안좋게 보이기 위해서 지어낸 가짜 풍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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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8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2.22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고려 시대에 고려장이라는 풍습은 없었습니다. 고려 시대 사람들은 대부분 불교를 믿었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했고 게다가 효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건 다른 나라의 옛날 이야기가 마치 고려 시대 풍습인 것처럼 잘못 전해졌기 때문이지요

    인도 설화를 보면 기로국에 이야기가 나오는데

    옛날 기로국에는 늙은 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가서 산속에 내다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고합니다. 그런데 함께 간 어린 자식이 이 다음에 아버지가 늙으면 똑같이 내다 버릴 거라면서 지게를 챙겼고 아들은 어린 자식의 말에 잘못을 뉘우치고 늙은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와서 잘 살았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의 우수한 문화를 깎아내리기 위해 기로국의 이야기를 고려의 이야기인 것처럼 바꿨습니다. 그래서 고려장이 고려 시대에 진짜로 있었던 풍습이라고 잘못 전해지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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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에 나이든 부모를 다른 곳에 버려두고 오던 풍습이 있었다는 설화 입니다.

    해당설화는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나 고려장이라는 용어가 해당 설화와 결합한 것은 19세기 말~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이며 이에 따라 일본제국의 역사 왜곡설이나 단순한 루머가 확산된것이라는 다양한 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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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고려장이란 풍습은 조선 후기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는 왕족들이나 귀족층에서는 유사한 풍습이 있었을 수 있지만, 이를 일반적인 풍습으로 전파하거나 실천했던 증거는 없습니다. 따라서 고려장이 실제로 있었는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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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식민시대 일본인들에 의해 철저히 꾸며진 사악한 풍습이었습니다.

    고려장은 사료 그 어디에도 없고, 단, 전염병환자를 따로 산 속에 분리시켰다는 기록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산 깊은 곳에 혜인소를 지어 전염병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고려장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고려장이란 용어를 만든 이유로는, 일제가 우리 문화재를 도굴하고자 만들어낸 용어로 신조어인데, 무덤의 부장품까지 노리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돈받고 무덤을 파는 인부들이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을 꺼려했는데, 이는 한민족의 정서상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전부터 죽은 사람의 무덤에는 영혼이 있다고 믿었고, 특히 '경노효친 숭조 경천애인'이 조선의 국시였으니 무덤을 도굴하는 것은 가장 질이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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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살아있는 노인을 버리는 고려장 풍습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역사자료를 아무리 뒤져봐도 고려장 이라는 말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고려장인 일본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 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일본 사람들은 우리의 문화재를 훔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요. 그러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문화재가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일본은 우리 조상들의 무덤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는데요. 제법 큰 무덤 속에 장신구, 예술품 같은 귀한 물건들이 함께 묻혀 있다는 것을 알아냈던 거죠,

    그래서 일본인들은 무덤을 마음대로 파헤치기 위해 말도 안되는 유언비어를 퍼트리게 되는데요. 그것은 바로 고려시대에는 부모를 산채로 내다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 라는 이 무덤은 주인도 부모를 고려장 시킨 못된 놈이다 그러니 이 무덤을 파헤쳐도 상관없다 라는 명분을 만들고 이렇게 치사한 방법으로 우리의 문화재를 빼돌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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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황승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장이라는 풍습은 실제 우리의 풍습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나 실제 고려장이 있었다는 객관적인 근거는 없으며 세종 때의 삼강행실도에 나타난 것은 중국 효자전에 원각이야기를 실은것이며 조선총독부에서 출간한 조선동화집에서 언급된 것은 일본의 조선문화말살의 일환으로 보여집니다. 실제 고려장과 비슷한 도시설화는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여러 나라에서 전승되어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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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장이라는 풍습이 실제로 존재하였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합니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3488

    고려장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일본의 날조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https://www.100ssd.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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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장"이란 용어는 고려시대에 실제로 사용된 적은 없으며, 최근에 등장한 개념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고려장"이라는 풍습이 실제로 있었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역사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는 왕실이나 귀족층에서 결혼식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를 열었으며, 이들 행사에서는 대개 귀족들이 서로의 예쁘게 꾸며진 옷차림을 비교하고 겨루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부유함과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대개 부모님이 자녀의 결혼 상대를 결정하고 결혼식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려시대의 결혼식과 "고려장"의 개념은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고려장"은 대개 예쁜 옷을 입고, 화려한 미용을 하고, 댄스나 노래를 부르는 등의 행사로, 단순한 결혼식보다는 더 화려하고, 축제적인 성격이 강한 것으로 일컫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개념은 대개 대중문화나 방송에서 등장한 것으로, 역사적으로 입증된 개념은 아니지만, 다양한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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