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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말
냉철한말22.11.14

사찰은 왜 대부분 산에 있나요?

절이 도심에 있는 경우는 봉은사, 조계사 정도. 거의 본적이 없는거 같습니다. 사찰은 왜 대부분 산속에 있나요? 반면 교회는 반대로 산속에 있는 경우를 보지 못한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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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는 숭불정책으르 절이 도심근처와 산에 있었습니다.

    왕족은 귀족은 도심가까이에 있는 절에 다니고 가끔은 바람쐬듯 산으로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숭유정책으로 유교를 숭배했으니 정치적으로 탄압받던 불교가 산속으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깊은 산속에 절이 있게 된것밉니다.

    절도역시 도심에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도심에도 절이 있어 불자들이 많이 다니게 됩니다.

    이는 교회보다 절이 도심에 극히 적기때문이기도 합니다.

    질문자님의 답변에 도움이 되셨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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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노인옥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불교가 전래되어 불교를 믿는 사람이 많았고 고려시대에는이런 불교가 부흥한 시기라 절이 도심지 가까이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불교가 배척을 당함에 따라서 절이 대부분 사람들이 드문 산속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미흡하지만 제 답변이 질문자님께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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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찰은 불교 시대에 너무 많다보니 도시 사찰이 포화되어 산에 까지 절이 들어서게 됩니다. 이런 포화상태에서 산사만 남게 되자 오늘날 불교는 산사가 정석이 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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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찰은 본디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도 많이 있었고, 승려들의 수행과 정진을 위해서 고즈넉한 산 속에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 중기 정도까지는 그랬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고려시대 말에 너무 비대해지고, 나라의 존폐까지 흔들리게 했던 불교가 배척받기 시작했고,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한 신진사대부 세력이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유교를 중국으로부터 들여오면서, 숭유억불 정책으로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사찰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특히 주거지와 가까이 있던 사찰들이 사라지거나 산 속으로 옮겨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종교 사원들은 사람들이 사는 중심에 위치합니다. 그래야 널리 포교하기도 좋습니다. 수행이라는 이유로 고즈넉한 곳에 있는 사찰도 필요하겠지만 종교의 목적 중 하나인 선한 영향력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속세와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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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절이 산속에 많은 이유는 조선시대 때 숭유억불((崇儒抑佛, 불교 교단의 세력을 강제로 축소시키고 약하게 유지하기를 목적으로 하는 조선의 주요 국가시책)정책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텐데, 아래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45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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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수도승' 이라하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수양에 전념 하려면 주위

    환경이 좋아야겠죠. 반면 교화는

    전교를 위주로 하니까 그런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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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로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요즘은 도심 속에서 사찰을 종종 볼 수 이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사찰들은 대게 명산에 있고 일주문을 지나 한참을 들어가야 사찰을 만날 수 있는데요.

    옛날 불교가 융성한 시기에는 사찰이 도심과 산속 모두 있어 도심 가까운 곳은 주로 왕과 귀족이 다니며 산속 사찰은 가끔 여행 가듯이 큰 맘먹고 다녀왔다고 합니다. 이후 조선시대로 넘어오며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시대가 오니 도시 속의 절이 사라지게 되었답니다. 한옥은 나무못을 사용하고 짜맞춤 목조건물로 개조가 용이 해서 사찰을 헐고 양반집을 새로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심 속의 사찰은 양반집으로 변하고 이동이 불편한 산속 사찰만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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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찰이 산속에 많은 이유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면서 성리학적 질서를 국가의 기본이념으로 삼아 숭유억불책을 쓴 까닭에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다보니 사찰이 이겨내지 못하고 탄압을 피해 산속으로 피신해들어간 데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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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찰은 그 존재 이유 자체가 참선과 명상을 통한 해탈에 이르기 위한 목적입니다. 즉 세상을 구원 하겠다는 것 보다는 스님혹은 보살님본인이 노력을 해서 해탈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되도록 세속의 사람들돠 떨어진 곳에 절을 짓고 조용하게 지내려고 하지요. 교회는 존재 자체가 한명의 세상 사람들이라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기 위함이기에 세상 사람들과 가까이에 교회를 지어 사람들이 많아 찾을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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