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찰은 본디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도 많이 있었고, 승려들의 수행과 정진을 위해서 고즈넉한 산 속에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 중기 정도까지는 그랬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고려시대 말에 너무 비대해지고, 나라의 존폐까지 흔들리게 했던 불교가 배척받기 시작했고,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한 신진사대부 세력이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유교를 중국으로부터 들여오면서, 숭유억불 정책으로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사찰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특히 주거지와 가까이 있던 사찰들이 사라지거나 산 속으로 옮겨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종교 사원들은 사람들이 사는 중심에 위치합니다. 그래야 널리 포교하기도 좋습니다. 수행이라는 이유로 고즈넉한 곳에 있는 사찰도 필요하겠지만 종교의 목적 중 하나인 선한 영향력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속세와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