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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12.03

고려시대 왕사 책봉에대한 절차가 있었나요?

고려시대 왕사는 임금의 스승으로 알려져있는데, 이러한 높은 자리는 절차가 따로 있었다고 하는데요

왕사 책봉 절차의 과정에 대해 상세히 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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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은 태조의 영당이 있는 봉은사에 행차하여 면복을 갖추고 고승을 상좌에 앉힌 뒤 그 아래에서 절하였습니다. 이때 고승이 상좌에 앉기를 사양하는 것을 피석지의(避席之儀)라고 합니다. 왕은 또한 책봉의 조서를 내리는 데 이를 관고(官誥)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의식 절차를 맡아서 주관하던 임시관청으로 봉숭도감(封崇都監)이 설치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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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사의 책봉절차를 살펴보면, 먼저 왕사의 선정을 위하여 왕은 상부(相府)에 자문을 구하거나 왕이 직접 고승을 추천하였으며, 무신집권 때에는 실권자가 선정하기도 하였다. 책봉될 고승이 선정되면 먼저 칙서를 가진 대신을 사찰로 파견하여 책봉을 수락할 것을 청하는 서신지례(書紳之禮)를 가진다. 고승은 이를 세 번 사양한다.

    이때 왕의 간곡한 뜻을 찬앙지정(讚仰之情)이라 하며, 세 번 사양하는 예를 삼반지례(三反之禮)라고 하였다. 여러 차례 사양하다가 고승은 사양표(謝讓表)를 그치게 되며, 왕은 곧 왕사의 의장(儀仗)에 해당하는 물품을 보내어 개경으로 모시도록 하였다. 고승은 하사받은 가사 및 장신구를 갖추고 하산례(下山禮)를 행하며, 개경에 있는 대사찰에 이르면 왕은 비로소 고승에게 제자의 예를 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즉, 왕은 태조의 영당(影堂)이 있는 봉은사(奉恩寺)에 행차하여 면복을 갖추고 고승을 상좌에 앉힌 뒤 그 아래에서 절하였다. 이때 고승이 상좌에 앉기를 사양하는 것을 피석지의(避席之儀)라고 한다. 왕은 또 책봉의 조서를 내리는데 이를 관고(官誥)라 하였다. 왕사는 대체로 최고의 법계를 가진 고승 가운데에서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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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은 고승에게 제자의 예를 행하였습니다. 그 후 면복을 갖추고 고승을 상좌에 앉힌 뒤 그 아래에서 절하였습니다. 이를 관고라 하였으며, 이러한 관고는 동문선과 동국이상국집에서 볼 수 있고, 금석문에도 단편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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