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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弓裔)는 제47대 헌안왕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후궁 사이의 소생이라는 설과 제48대 경문왕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궁예가 901년 후고구려를 국호를 한 것은 버려진 자신이 신라에 대한 반감과 반신라적 태도를 통해 호족, 백성들의 지지를 의도한 것입니다. 즉 당시 정치적 상항이 밤영된 것입니다. 궁예는 순전히 그의 정치적 목적에서 고구려의 계승을 표방하였으므로 그의 세력이 강대해지고 국가의 기초가 확고해지자 이후에도 후고구려란 국호를 마진(摩震)·태봉(泰封)으로 고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