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직의 조의제문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조선시대에 사화의 발생에서 김종직의 조의제문으로 인해 무오사화가 발생을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김종직의 조의제문의 내용이 무엇이길래 무오사화의 원인이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성리학자 김종직의 조의제문은
초나라 회왕, 즉 의제의 죽음을 조문하기 위해서였는데,
숙부인 서초패왕 항우에게 희생당한 어린 조카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의제를 조문하는 내용이지만,실질적으로는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의제문은 조선시대 성리학자 김종직이 지은 제사문으로 항우에게 살해당하여 물에 던져진 회왕 즉, 초 의제를 추모하는 글 입니다.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빗대어 지은 글로,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단종을 의제에 비유함으로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난, 세조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예종, 성종, 연산군 등은 왕권의 정통성을 인정할수 없다는 것으로 해석, 세조의 왕위 찬탈에 참가한 훈구 대신들 역시 비난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정축 10월 어떤날 내가 밀성에서 경산으로 가는 길에 딥계역에서 숙박하는데 꿈에 신이 칠장의 의복을 입고 훤칠한 모습으로 와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초나라 회왕의 손자인 심 인데 서초패왕에게 살해되어 침강에 잠겼다' 그리고는 문득 사라졌다.
내가 꿈에서 깨어 놀라며 이르기를 '회왕은 남초 사람이요, 나는 동이 사람으로 지역의 서로 떨어진 거리가 만여리가 될뿐이아니며 세대의 선후도 또한 천년이 넘는데 꿈속에 와서 감응하니 이것이 무슨 상서로움일까 , 또 역사를 상고해보아도 강에 잠겼다는 말은 없으니 어찌 항우가 사람을 시켜서 비밀리에 쳐죽이고 그 시체를 물에 던진 것일까, 알수 없는 일이다.' 하여 마침내 문을 지어 조문한다.
하늘이 사물의 법을 마련하여 사람에게 주었으니 어느 누가 사대와 오상을 높일 줄 모르리오 , 중화라서 풍부하고 이적이라서 인색한 바 아니니 어찌 옛적에만 있고 지금은 없겠는가 그러기에 나는 동방사람이요 또 천년을 뒤졌건만 삼가 초 회왕을 조문한다.
옛날 조룡이 아각을 가지고 노니 사해의 물결이 붉어 피가 되었어라 비록 전유와 추애라도 어찌 보전하겠는가 그물 벗을 생각에 급급했으니 당시 육국의 후손들은 숨고 도망가서 겨우 평민과 짝이 되었다고
항량은 남쪽 나라의 장군의 자손으로 어호를 좇아아 일을 일으켰네
왕위를 얻되 백성의 소망에 따랐어라
끊어졌던 웅역의 제사를 보존하였도다
건부를 쥐고 임금이 됨이여 천하에는 진실로 미씨보다 큰 것이 없었다
장자를 보내어 관중에 들어가게 함이여 역시 족히 그 인의를 보았다
양흔남탕인 항우가 관군을 마음대로 평정하였구나
어찌 잡아다가 제부에 기름칠 아니했는고
아아 , 형세가 너무도 그렇지 아니함이여 나는 왕을 위해 더욱 두렵게 여겼어라
반서를 당하여 해석이 됨이여 과연 하늘의 운수가 정상이 아니었구나
침의 산이 우뚝하여 하늘에 닿음에야 그림자가 해를 가리어 저녁을 향하고 침의 물은 밤낮으로 흘러가는구나 물결이 넘실거려 돌아올줄 모른다
천지가 장구한들 한이 어찌 다할까 넋은 지금도 표탕하다
내 마음이 금석을 꿰뚫음이여 왕이 문득 꿈속에 임하였구나
자양의 노필을 따라감이여 생각이 초조하여 흠흠하다 술잔을 들어 땅에 부음이여 바라옵건데 영령은 와서 흠향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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