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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마더77
망고마더7724.04.15

나전칠기에 역사에 대해서 궁금해요!

우리나라에 역사중에 문화재중 나전 칠기를 뺴놓을 수 없을 텐데요 문득 이런 나전 칠기는 언제 시작되었고 어떤 평가를 해외에서는 받고 있는지 나전칠기에 역사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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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나전찰기는 중국의 당나라로부터 전래되었습니다.

    한반도에 들어온 나전칠기 공예기법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점차 유행하게 됩니다.

    신라의 경우 식기방이라 불리던 관청이 있었는데

    이곳에 나전칠기를 포함한 다양한 칠기제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의 나전칠기 역사가 궁금한 것 같습니다.

    자개를 이용하여 장식한 물건 중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것은 수메르 문명의 왕릉에서 출토한 우르의 군기와 우르의 전승기념비라고 합니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평탈기법에 가까운 나전칠기를 발견하고 삼국사기에 칠전이라고 하는 관청이 신라에 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삼국시대엔 나전칠기를 널리 제작하고 있지 않았나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신라 때의 나전 유물로 국보 제140호 나전 화문 동경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기록인 고려도경과 조선시대의 동국문헌비고에 고려 나전칠기와 관련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나전칠기는 우선 나전을 풀이하면 소라 '라' 비녀 '전'이라고 하는데 다만 금이나 은판을 오려 붙인 것은 따로 평탈이라고 부릅니다. 나전이라는 말은 한국 중국 일본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한자어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자개"라는 고유어를 써 왔습니다. 따라서 그 만드는 일을 자개박이 또는 자개박는다 라고 일컫습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자개라고 기록하기도 하였지만 이는 음차한 표기에 불과하며 11세기 고려의 언어를 기록한 [계림유사]에서 나왈개개라 했는데 그것이 자개의 오기임이 사실이라면 일찍부터 자개라고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나전칠기는 일반적으로 목제품의 표면에 옻칠을 하고 그것에다 한층 치레 삼아 첨가하는 자개무늬를 가리키며 그런 점에서 목칠공 예에 부수되는 장식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나전기법은 중국 당나라 때에 성행하였으며 그것이 우리나라와 일본에 전하여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전래의 초기에는 주로 백색의 야광패를 사용했으나 후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청록 빛깔을 띤 복잡한 색상의 전복 껍데기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패각이 이처럼 아름다운 빛깔을 발하는 것은 탄산칼륨의 무색 투명한 결정이 주 성분인 까닭에 그것이 빛을 받을때 프리즘과 같은 색광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또한 조개껍데기 자체의 박막에서 생기는 색현상도 그 발색에 중요한 구실을 하며 전복 껍데기의 경우는 박막에 의한 그 발색에 중요한 다양하게 작용하는 본보기이기도 합니다. 나전기법은 기물에다 무늬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칠공예의 하나이며 그러한 장식법은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하여 버마 태국 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일원에 널리 보급되어 있으며 지역에 따라 각기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외국인들에게는 매우 희귀한 물건으로 방한하는 외국인들은 적어도 한개씩은 구입하여 본국으로 돌아가는것 같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나전칠기는 대한민국의 고대 예술 기법으로, 기원은 약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에는 주로 궁궐과 사찰에서 사용되는 고급 예술품이었습니다. 그 후 조선 시대에는 궁중 예술로 발전하였으며, 특히 조선 왕조의 귀중품으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고려 나전칠기는 15건으로, 대부분 해외에 있다고 합니다. 국내에는 2018년 보물로 지정된 ‘나전모란넝쿨무늬경전함’을 비롯해 ‘나전국화넝쿨무늬합’ ‘나전대모국화넝쿨무늬불자’ 등 3개뿐인데 나머지는 일본 7개를 포함해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지에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