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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런한오소니23
가지런한오소니2323.06.03

중국의 중화사상은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인가요?

중국은 다른 나라보다 중화사상이 심해서 다른 나라들을 속국으로 만드려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중국의 중화사상은 언제부터 유래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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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03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과거 중화사상의 유래가 된 서적들의 내용을 살피면, 전간기 이전의 범게르만주의나 범슬라브주의와 크게 다른 점은 없다. 과거 중화사상은 현재 서구식 민족주의와는 비슷한 점이 별로 없어 민족적 거부감이 적었다. 또 하나의 다른 예로, 초기 로마가 팽창하던 시절, 라틴 문화권이 가장 우월하다는 사상도 있었다. 현실은 로마와 라틴 연합이 싸우게 되었지만, 결국 승리한 로마가 점령한 라틴 도시국가들을 대한 것만 봐도, 로마 역시 이런 생각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로마는 이들에게 완전한 자치를 주고, 투표권을 제외한 모든 로마 시민과 동등한 권리가 보장된 라틴 시민권을 주었다. 연공도 요구하지 않았고, 단지 요구한 것은 전쟁이 났을 때 로마에게 보조병을 보냄으로써 협력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점을 보면, 로마의 민족 역시 라틴 민족들을 자신들과 동일하게 여겼으며 같은 라틴 문화권으로서 상당한 특혜를 베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마의 경우 한니발의 침략을 받았을 당시 라틴 문화권에 있는 국가들의 자발적 지원을 받았던 반면에 중국의 한족 통일 왕조들이 이민족의 침략을 여러번 당할 때마다 중화문화권임을 자처하며 지원병을 제대로 보낸 나라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로마와는 상당히 다르다. 중화문화권에 속한 백제 또한 그 멸망 과정을 살펴보면 사비성이 함락되는 순간까지도 지방 유력자들이 능동적으로 군대를 보내지 않았거나 지휘부가 통일되지 못해 각개격파당하는 모습을 주로 보인다. 부흥운동도 마찬가지로 세력들이 통합되지 못하고 따로 노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무엇보다도 백제는 중화문화권에 속해 당나라에 조공하는 등 사대하던 나라였는데도 침략당하여 멸망했다는 점이다. 이는 라틴 문화권과 중화문화권이 제각기 매우 다르게 작용되었음을 뜻한다.

    물론 중국의 통일왕조들은 중화권의 영향이 크진 않은 편인 원나라 같은 이민족 왕조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중화권에 속한 나라들에 상당한 특혜를 베풀어 주었다. 하지만 항상 그랬던건 아니었는데 중화 패권에 위협이 될만한 세력, 특히 고조선, 고구려, 신라, 여진족처럼 요동과 만주 지역을 차지한 세력들과 베트남은 중국에 잘 사대하거나, 딱히 위협을 가하지 않았음에도 중국에 통일왕조가 들어서고 나면 별의별 트집을 잡혀 침공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특히 베트남이 숱하게 중국의 침공과 지배를 받은 이유는 원래 한나라, 당나라 시대에 자신들의 영토였으로 '다시 회복해야 할 영토'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16] 중화사상 덕분에 중국과 주변국들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 경우도 있었지만 베트남과 요동, 만주 지역을 집요하게 복속시키려한 시도들은 중화사상이 수틀리면 상대국가를 얼마든지 무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명분을 중국 통일왕조들에게 제공한 예시로 볼 수 있다.

    전근대에는 당연히 혈연에 기반한 민족적인 면보다 학문적, 문화적 우월성이 강조된 사상이기 때문에 다른 민족들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이 사상의 영향으로 이민족들이 중국을 정복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중국을 자처한 사례들이 많다. 한 예로 청나라는 40년 만에 중국을 자처했다. 이 경우 민족끼리 동화되었다고 보기보다는, 중국을 지배함으로써 타민족, 타국들보다 우월한 문명을 갖게 되었다는 선포에 가깝다. 중화권에 속하는 국가들이 중화사상을 받아들인 이면에는 우리는 이런 위대한 문명의 일원이라는 생각이 있었으며, 서구에서 근대적 민족주의가 들어온 최근의 시각이 아니라면 딱히 민족적 자부심을 훼손하지 않는 사상이기 때문에 실질적 창시자인 한족만이 아닌 다른 민족들에게도 빠르게 전파되었다. 중국이나 중화 자체가 근대적 민족 개념이 아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최근에는 과연 이민족들이 마냥 동화되었다는 기존의 해석이 합당한가에 대한 의문은 제시된다.[17] 역사해석에도 중화주의가 많이 반영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출처: 나무위키 중화사상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화사상의 유래.


    그것은 어느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대 중국은 정말 너무나도 막강한 나라였죠. 가도가도 끝없는 비옥한 평지들과

    수많은 군사, 백성들 거기다 수많은 현자들과 영웅들까지.. 중국이 아닌 땅들은

    또 얼마나 형편없는 땅들이었습니까?(우리나라는 조선시대부터 사대주의를 했기때문에

    가만히 냅뒀죠.)


    서쪽으로는 산과 사막밖에 없는 황무지, 북쪽으로 가면 매우 추운 한지. 남쪽으로 가면 덥고 습기차고 벌레많은 곳, 동쪽(조선이 있었죠.사대주의 때문에 걍 놔 둔 듯.)


    중국인들은 그렇게 아시아 대륙의 기름진 땅덩어리를 뭉텅 차지하고 그 땅을

    중원(中原)이라 일컬었다죠.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 '중국'은 중국 사람들에겐 하나의 '세계'였다고 볼수 있죠. 중국 밖의 세계는 쓸모없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했고 중국 사람이 아닌 사람은 모두 오랑캐라 일컬었을 만큼 거만한 '중화사상'이 형성되어 버린 거죠.


    즉, 정리해보면 중화사상은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되어진 게 아니라 너무나 위대하고 비옥하고 부유한 환경 덕에 중국인들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화사상(中華思想)이란 중국의 민족사상을 가리킨다. 중(中)은 < 가운데 중 >이며 지리적·문화적으로 '중앙'이라는 뜻이다. 화(華)는 < 꽃 화 >이며 중국의 '뛰어난 문화'를 의미한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며 모든 것이 중국을 중심으로 하여 전 세계에 퍼져 나간다고 믿는 말이다.

    -출처: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