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말로 좋은 질문입니다.(좋아요^^)
이토 히로부미는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고 1907년 7월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으며, 한일 신협약을 강요한 인물입니다. 따라서 그는 일본 정부를 대표해 한국 정부를 진두지휘하다 안중근 의상에 의해 사살된 '침략의 원흉'이기도 합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농민 출신이지만 무사 집안의 양자로 들어갔으며,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조슈번 출신으로 출세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찌기 그는 에도막부 말기 존왕양이 운동에 동참하여 친막부 세력 암살 등 정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1871년 폐번치현의 과정에서 1873년 정한론 정변 등에서 이토는 각 세력들의 조정자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여 유력자들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1863년 이와쿠라 사절단으로 서양을 견학한 그는 일본 메이지 정부의 근대화에 깊숙이 개입하였으며, 천황제 중심의 헌법 체제를 만든 장본인기도 합니다. 즉 민중의 자유 민권 운동을 탄압하고, 국가 신도와 천황제를 결합한 일본 제국주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입니다. 이는 1930년 군국주의 일본의 밑바탕이 됩니다. 또한 '정한론' 정변 당시 '내치파'(대외 팽창을 반대하지는 않음)에 속하지만 타이완 침공, 오키나와 정벌, 강화도 조약 조약, 청일 전쟁 , 러일 전쟁 등 일본의 대륙 침략 노선(제국주의)을 지지했으며, 통감으로서 한국의 식민지 지배를 신철에 나선 인물입니다.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