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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불독44
냉철한불독4423.12.31

노량 대첩 이후 일본은 아예 침략의욕을 접었나요?

일본 왜적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려고 임진왜란을 일으켰잖아요. 그런데 노량대첩을 끝으로 일본군은 철수 했다고 하던데, 아예 모든 병사들이 돌아간 것인가요? 침략에 대한 생각을 접은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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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 전투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고 일본군이 크게 패배한 이후 일본은 침략의욕을 접고 한동안 조선을 침략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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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노량 해전 이후에도 일본 내부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그의 지지파,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그의 지지파 사이에서 권력 다툼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1603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쇼군 지위에 오르면서 에도 막부가 성립되었고, 이후 조선과 일본은 200여 년간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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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염민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노량대첩 이후 패배를 확정짓고 돌아갔지만

    침략에 대한 야욕은 접지 않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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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조명연합군과 일본이 약속한 내용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15만 대군을 조선에 파병하여 정유재란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조명연합군의 세력이 강하여 곳곳에서 패전을 거듭하던 와중에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소식을 접한 왜군 수뇌부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에 철수를 결정하고 순천 사천 울산으로 결집을 하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조명연합군이 순천왜성을 공격하여 고니시 유키나와 부대에게 대승을 거두고 고립시켜버립니다. 그러자 고성과 사천에 있던 시마즈 부대가 500여척을 거느리고 유키나와 부대를 구출하러 오게 되고 이를 예측하고 잠복중이던 조명 연합수군에게 200척이 대파당하고 150척이 반파되었으며 150척은 도망치기에 급급하였습니다. 이순신은 적을 섬멸하기 위해 군사들을 독려하며 북을 치며 사기를 복돋우던 중 적의 흉탄에 맞아 죽게됩니다. 그러나 일본 수군은 패전으로 전의를 상실한 채로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후에 일본의 도쿠가와 이예야스가 정권을 잡으면서 조선에 대해 선린외교를 강조하여 우호적인 관계가 수립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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