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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등에44
조용한등에4424.03.31

북간도도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나요?

북간도도 우리나라의 독립운동 거점이었나요 >이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신다면 좋아요와 추천을 눌러드리고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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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북간도는 조선 시대 우리 영토로 인식하여 오래동안 우리 동포들이 거주하고 살았습니다. 조선과 청은 국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712년 백두산 정계비를 세웠지만 이후에도 영토 의식이 있었으며, 1885년 간도 귀속 외교 분쟁도 있었죠. 즉 간도는 우리 영토였습니다.

    이곳에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다보니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된 시점에 의병, 애국지사들이 이곳에 학교, 정착지 등을 세워 독립 운동 기지로 삼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고 만주 북간도로 이주했던 조선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황무지를 개간하여 삶의 터전으로 삼고 민족운동과 기독교를 결합시킨 남다른 문화를 뿌리내렸습니다. 이는 당대 항일 독립 운동은 물론 해방 뒤 한국 사회 민주화운동에도 뚜렷한 영향을 미칩니다. 북간도는 두만강 북부 만주땅으로 지금의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를 떠올리면 됩니다. 당시 북간도 일대의 대표적인 한인촌으로 명동촌이 있었습니다. 시인 윤동주가 나고 자란 곳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북간도에 세워졌던 정동학교 명동학교 창동학교 장동학교는 일반교육기관이라기 보다는 사관학교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군사훈련을 통해 독립군을 양성하고자 하였으며 음악시간에도 독립군가를 불렀습니다.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이 조선을 완전히 장악하자 독립운동가들은

    국내에서는 독립운동이 제한된다고 생각하고

    조선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간도 지방으로 이전하여

    조선인들의 후원속에 독립운동을 이어 나갔습니다.

    당시 조선인들은 힘든 삶속에서도 해외에서도

    후원금을 보내는 등 크고 작게 독립운동을

    펼쳤고 그들의 노력이 있어 대한민국의 독립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제 답변이 도움이 되셨으면 좋아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