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 세종은 국가체제 정비 과정에서 양수척 등을 양민화시켜서 국력을 증진하고 동화시키려 했다.[12] 그러한 의미에서 양수척 화척을 백정이라고 부르게 하면서 적극적인 정착유도정책을 꾀하였는데, 문제는 양수척 화척의 생활상이 일반 농민들과 너무나도 달랐다는 것이다. 즉 남녀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말을 타고 유랑하던 집단을 강제로 정착을 시키자니 개간된 땅은 부족하고, 농사일은 익숙하지도 않고, 말을 타고 무기를 휘두르던 버릇이 있으니 강도질의 유혹에 빠지고, 정착하고 싶어도 정착할만한 항산이 없는 경우도 많고, 고기를 먹고 살았으니 소고기 금지령에 대놓고 반하고 싶고, 기존의 거친 생활상으로 인하여 범죄에 대한 거부감도 약한 편이었으니 화척들은 백정에 편입되는 걸 원치 않았고 기존의 백정들 사이에서도 어마어마한 반발이 튀어나왔다. 백정들은 자신을 구백정이라 부르고 화척들은 신백정으로 구분해서 동화되는 걸 꺼렸으며 이로 인해 기존의 농민들과 신백정들의 관계는 크게 악화되었다. 결국 시간이 흘러 구백정은 백성이라 칭하게 되고 백정이란 말은 화척들만을 칭하게 되는 단어로 남았다.
-출처: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