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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조리마수리346
요리조리마수리34623.08.25

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 부흥운동은 어떻게 전개되었나요?

고구려가 당나라와 신라의 나당연합군에 의해 결국 멸망을 하게 되는데요. 이후에 고구려 유민들이 나라를 다시 되찾자는 뜻으로 부흥운동을 펼쳤다고 전해지는데 이 부흥운동의 구체적인 과정이 어떠하였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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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가 패망하고 당나라로 압송된 보장왕도 고구려 부흥운동을 벌이는데, 당 고종은 보장왕에게 책임을 면제하여 677년 요동도독조선군왕으로 임명하나 말갈족을 규합하여 군사를 일으키려다가 발각되어 681년 당나라 양주에 유배, 그곳에서 1년 후 사망합니다.

    이후 고구려 유민들이 당의 통치에 반항하자 당은 고구려 유민을 본토로 이주시켰는데, 그 가운데 동만주 지역으로 탈출한 영주 일대의 유민들이 말갈족과 함께 발해를 건국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 부흥운동 과정에서 안승과 검모잠 사이에 내분이 발생하였고 이에 안승이 검모잠을 죽였다고 전해지는데, 현재 학계에서는 신라에게 적대적인 검모잠과 나름 우호적인 안승 사이에 의견 충돌이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의 부흥과정은 검모잠, 안승, 고연무 등의 인물이 신라와 협력해 나당전쟁에 참여해서 고구려를 부흥시키려던 과정으로 전개됐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기 668년 9월 고구려의 평양성이 함락되었지만, 당나라에 불만을 품고 저항한 유민도 있었는데 검모잠과 안승은 한성을 중심으로 왕국의 재건을 추구하게 됩니다. 두만강과 송화강 유역 그리고 요동 지역의 고구려 주요 거점에서도 부흥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이 중에서 한성의 고구려 부흥운동 세력은 673년 말까지 신라의 지원을 받으며 당나라에 저항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임진강 유역에서 대패하며 재기하지 못하였고 각지의 부흥 운동 역시 실패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