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종은 일본의 세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명성황후를 죽인 것도 모자라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고 거짓 명을 내리라고 요구하는 일본에 대한 분노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마침 1896년 당시에 전국에 걸쳐 의병이 일어나자 친일 내각인 김홍집 내각은 지방의 진위대(鎭衛隊)를 이용하여 의병을 진압하려고 했으나 이로 말미암아 수도 경비에 공백이 생겼고, 이 기회를 틈타 친 러파측은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려는 모의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미 이전에도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 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1895년 음력 10월 12일 춘생문사건(春生門事件) 때에도 있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