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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도화지113
하얀도화지11323.09.06

조선시대 중앙군사편제는 어떻게 되었었나요?

안녕하세요

조선시대 중앙군사편제는 어떻게 되었었나요?

고려시대때는 2군6위로 알고 있는데, 조선시대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견룡군,응양군 그리고 흥위위 신호위 좌우위 금오위 천우위 감문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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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군사 조직은 중앙군과 지방군으로

    나뉘었다. 중앙군은 궁궐과 서울을 수비하는

    5위로 구성되고, 그 지휘 책임은 문반 관료가 맡았다. 중앙군은 정군을 중심으로 갑사나

    특수병으로 구성되었다.


  •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중앙군은 건국 초엽 고려 때의 2군6위를 바탕으로 하여 10위 · 10사 · 12사 제도로 변혁이 반복되다가, 1451년(문종 1) 5사로 개편된 뒤, 1457년(세조 3) 5위제도로 정착되었습니다. 이는 고려 이래의 전투편성인 5군진법에 따른 편제로 강화된 체제였습니다. 또, 5사 25영으로 편성하여 각 영마다 군사를 나누던 것을 5위에 고정시킴으로써 조직의 일원화가 아닌 기능의 일원화를 도모한 것이 특색입니다.

    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5위를 중심으로 운영되던 조선 초기의 중앙군은 16세기 이후 군역의 대립제가 일반화되면서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였다. 임진왜란 초기에 어이없는 패전을 경험한 조정에서는 새로운 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왜군을 물리치는 데 효과적인 편제와 군사 훈련 방식을 모색하였다. 그 결과, 훈련도감이 설치되었다. 훈련도감의 군병은 삼수병으로 편성되었는데, 이들은 장기간 근무를 하고 일정한 급료를 받는 상비군으로서, 의무병이 아닌 직업 군인의 성격을 가진 군인이었다.

    훈련도감에 이어 대외 관계와 국내 정세의 변화에 따라 군영이 더 설치되었다. 후금과의 항쟁 과정에서 국방력 강화를 명분으로 어영청, 총융청, 수어청 등이 설치되었고, 숙종 때에 금위영이 추가로 설치되어 17세기 말에는 5군영 체제가 갖추어졌다.

    지방군의 방어 체제도 변화하였다. 조선 초기에 실시되던 진관 체제는 많은 외적의 침입에는 효과가 없었다. 이에 16세기 후반에 이르러 제승방략 체제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임진왜란 중에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다시 진관을 복구하고 속오법에 따라 군대를 편제하는 속오군 체제로 정비하였다.

    속오군은 위로는 양반에서부터 아래로는 노비에 이르기까지 편제되어, 평상시에는 생업에 종사하면서 향촌 사회를 지키다가 적이 침입해 오면 전투에 동원되었다. 그러나 양반이 노비와 함께 속오군에 편제되는 것을 회피함에 따라 상민과 노비들만 남게 되었다.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조선시대의 중앙군사편제는 고려시대의 2군6위에서 크게 발전하여, 5위(五衛)와 10사(十司)로 구성되었습니다.

    5위는 궁궐을 호위하고 왕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부대로, 좌위, 우위, 중위, 전위, 후위로 나뉘었습니다. 각 위에는 2,500명의 병력이 편제되었으며, 위장(衛將)이 지휘하였습니다.

    10사는 5위를 지원하는 부대로, 의흥, 익위, 훈도, 첨병, 궁시, 궁노, 의무, 군량, 의조, 의방으로 나뉘었습니다. 각 사에는 500명의 병력이 편제되었으며, 사령(司令)이 지휘하였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5위와 10사의 병력은 모두 2만 8,000명이었으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5만 명으로 증강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자호란 이후에는 5만 명으로 감축되었습니다. 참고 하셔서 도움되셨다면 추천 좋아요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