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 삼절이 박연 폭포, 서경덕, 황진이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경덕에 대해서는 민간에서도 여러 이야기가 전해 오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황진이와의 일화입니다 당대 최고 기녀였던 황진이가 서경덕을 존경하였으며 자신과 박연폭포 서경덕을 송도 삼절이라고 칭하겠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지요. 황진이는 송도에서 뛰어난 세 가지로 첫째는 산수 경치에 박연폭포, 둘째로는 화담 서경덕 그리고 셋째 자신을 꼽았다고 합니다. 당시 도학이 높다는 사람의 여색에 대한 태도를 시험해 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첫째 유학자인 퇴계는 담담하려고 하지만 무척 고민하는 눈치였고 둘째 화담은 자신의 요구대로 쓸어 안아주기까지 하는데 마치 물건을 다루듯 전혀 관심 없어 보였고 셋째 면벽 9년의 생불 스님이라는 지족선사는 전혀 접근도 못하게 하다가 그만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파계하여 돌아 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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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제도는 언제 시작된것인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민주주의는 종종 기원전 500년경 그리스로 확인되는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 만들어졌다고 가정되며 이는 넓은 의미에서 민주정부가 5세기 이전 세계의 여러 지역의 존재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한 부족과 같은 경계가 뚜렷한 집단에서 민주주의가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고 가정하는 것은 타당합니다 만약 그 집단이 외부인에 의해, 통제에 의해서 충분히 독립되어 있어서 구성원이 자신의 업무를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부족의 장로들과 같은 상당수의 구성원이 그룹의 관심사에 대한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동등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에 말입니다 이러한 가정은 비문학적인 부족 사회에 대한 연구에 의해 뒷받침되어 왔는데 이것은 인간이 사냥과 채집을 통해 살아남은 수천 년 동안 많은 부족 집단들 사이에 민주정부가 존재했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초기 인류에게 민주주의는 실용적이고 가장 자연적인 정치 체제로 보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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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태극기는 최초로 누가 만들었나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의 태극기는 1882년 박영효가 고종의 명을 받아 일본에 가면서 태극 4괘 도안의 기회를 만들어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박영효과 만든 것이라고 전해지는데 1882년 8월에서 9월 특명 전권 대신 겸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된 박용효였다는 것이 정설인데 박영효의 사화기력에는 태극기를 만든 것이 1882년 9월 25일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두 달 이상 이른 7월 19일에 이미 미국에선 태극과 사괘로 이루어진 조선 국기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박영효가 만들었다는 태극기보다 최소한 이 2~3개월 앞서 조선국인 태극기가 존재했다는 것이 됩니다 1822년 5월 22일 제물포에서 중요한 행사가 거행됐는데 조선이 미국과 수교를 맺은 조미 수호 통상조약 조인식이 있었는데 이때 미국 성조기와 나란히 조선의 국기가 걸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분명 누군가 사진을 촬영했겠지만 1882년 5월 22일에 계양됐던 조선 국기가 무엇인지는 알수가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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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지본처라는 말은 무슨뜻인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환지본처는 불교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인데 그 뜻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이며 여기서 말하는 본처란 있어야 할 자리라는 의미이고 임진왜란과 같은 외란이나 일제강점기 때 강탈 또는 도난당한 불교계 문화유산들의 환수를 요구하는 불교계의 명분으로 자주 사용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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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공산주의 국가가 소련이 아니라는것이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산주의의 시작은 20세기 초에 러시아 제국은 자르 니콜라스 2세에 의해 지배된 독재 정치였으며 러시아에서는 수백만 명의 농민의 비참한 가난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반공 역사가 로버트 서비스는 가난과 억압이 마르크스 주의가 성장하기에 가장 좋은 토지가 되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념을 이 나라에 도입한 가장 큰 책임이 큰 사람은 게오르기 플레카노프였지만 이 운동 자체는 한동안 그의 신념으로 인해 시베리아에 있는 수용소에 유배되었던 블라디미르 레닌에 의해 조직되었고 러시아 사민당이라고 알려진 마르크스의 집단이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와 율리우스 마르토프가 이끄는 멘셰비키라는 두 개의 주요 파벌로 나뉘었지만 러시아에서 결정이 되었고 1905년 차르 통치에 반대하는 혁명이 일어나 소련이라고 알려진 노동자 협의회가 전국 각지에서 결성되었고 차르인들은 민주개혁을 강요받았고 선출된 정부인 두마를 도입했습니다. 1917년 1차 세계대전에 러시아를 포함한 두마에 대한 사회적 불안과 함께 볼셰비키들은 10월 혁명에서 정권을 잡았고 그들은 다양한 산업을 국유화하고 부유한 귀족들로부터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들에게 재 분배함으로써 나라를 대적하기 시작하고 그들은 이후 독일과의 전쟁에서 철수하여 러시아에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없었던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의 서명하였고 새 정부는 처음부터 조지아 민주공화국에서 집권한 무정부주의자, 사회 민주주의자, 러시아 사마라에서 코무 흐를 조직한 사회주의 혁명가, 서방세계뿐 아니라 백위군으로 알려진 차리스트 저항 세력을 흩뜨리는 등 다양한 시각을 가진 무수한 세력들의 저항에 직면했는데 이것은 볼셰비키들이 러시아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그 후에 그들의 권력을 온 나라에 통합함으로써 수도 모스크바의 크렘린으로부터 권력을 집중시켜 1922년 러시아 사회주의 연방 수업이어트 공화국은 공식적으로 소련 사회주의 공화국 연합을 이끌도록 재설계 된 것입니다 1924년 레닌은 건강이 좋지 않아 소련의 지도자직을 사임하고 곧 사망하였고 이후 스탈린이 통치권을 장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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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옛날부터 내려오던 무서운이야기 그슨새 이야기는 무슨내용인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주도의 전설에 나오는 요괴인 그슨새는 제주도의 특성이 무척 잘 드러나는 요괴인데 주젱이라는 제주도의 우장을 뒤집어 쓴 채 길거리를 돌아 다니며 제주도에서는 사악한 기운을 기운이나 액을 세라고 하거나 원통하게 죽은 영혼은 새가 된다고 믿기도 했지요 그 이유는 한자 '사'자가 와전되어 새로 '음'이 바뀌었다는 추측이 있습니다 또 다른 추측에 의하면 옛날 제주도에서는 살인을 한 죄인들에게 주젱이를 씌우는 일이 있었는데 그러한 죄인들이 죽어서 요괴가 된 것이라고도 하지요 그슨새도 '새' 자가 붙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주 사악한 악귀이며 일반적인 요괴나 귀신들과는 달리 낮에 돌아다니며 혼자 있는 사람을 해치고 홀려서 죽인다고 합니다 그슨새에게 홀린 사람은 정신이 얼이 빠지게 되는데 그슨새가 혼자 있는 사람만을 노리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홀린 사람에게 말을 걸거나 말리면 멈추게 되어 혼자 있는 사람만 노린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남성의 속성이 강한 존재라고 하는데 비슷한 이름의 그슨대 와는 다릅니다 그슨대는 밤에 그슨새는 낮에 돌아다니며 카테고리 자체가 다르지요 그슨새는 전형적인 우산 요괴(독각귀) 그슨대는 음흉한 그림자 귀신이라 아예 근본부터 다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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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테카 문명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즈텍 문명 또는 아스테카 문명은 지금의 멕시코 지역에 존재하던 아즈텍인들이 만든 문명인데 수도는 멕시코 중부 "텍스코코 호" 중앙의 인공섬에 있던 '테노치티틀란'이었고 마야 문명의 영향을 받았죠. 1519년 11월 8일 에스파냐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수도 테노치티틀란에 들어가고 아즈텍 제국의 통치자였던 몬테수마 2세는 백인인 코르테스와 그의 무리를 아즈텍 문명의 전설에 나오는 깃털 달린 뱀 케찰코아틀로 여겨 환대 했으나 내부의 정치적 위기를 이용한 코르테스의 개략으로 1521년 에스파냐 군대에게 정복 당했습니다. 아즈텍 제국의 총 인구는 500에서 600만 명으로 동 시기 영국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세계의 기준으로도 그럭저럭 인구 대국이었던 셈이었습니다. 그들의 문화는 인신공양 식인 등 다른 대륙에서 쇠퇴한 풍습이 상당한 규모로 이루어졌기에 대중문화에서는 잔혹한 고대문명 정도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지만 알고 보면 뛰어난 천문학 기술 대규모 도시건설 무상 의무교육 실시 등 나름 당시 아메리카 문명 중에서는 꽤나 고도로 발전한 분명이었습니다 인신 공연과 식인으로도 유명한데이 둘은 당시 매수 아메리카 전역에서 나타나긴 했지만 아즈텍은 독보적일 정도로 그 규모가 남달랐다고 합니다 종말론 떡밥으로 유명했던 마야 달력만큼은 아니지만 아즈텍의 달력인 '태양의 돌'도 상당히 유명합니다 이유인즉 현대 달력에 명절과 국경일을 표기하듯 월별 인신공양 제사를 표기했기 때문이며 여러 사회 요소들 가운데서도 특히 교육을 가장 중시해서 최초로 모든 자유민들에게 신분의 관계없이 남녀 모두에게 의무교육을 실행한 국가였고 물론 말만 제국이지 실상은 수많은 도시국가들로부터 조공만 받고 내정을 일체 간섭하지 않는 도시국가들의 군집인지라 행정력이 닿는 유일한 직할시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의 시민들에 한해서 였지요 남성의 경우 체력단련과 군사 교육 가상 전쟁 훈련과 일부러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극기 훈련에, 체제에 충성심을 갖게 하는 사상교육에 해당하는 종교교육 등의 군대와 같은 활동이 대부분이었고 수학이나 과학 같은 학문의 경우 평민학교에서는 최소한의 생활지식과 숫자 세기 정도의 기초만 가르쳐서 마치 같은 군국주의 국가인 스파르타가 했던 것처럼 사실상 징병제에 더 가까웠고 여자의 경우는 기초적인 생활 지식과 집안일, 여성으로서의 몸가짐 등을 익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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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과 시온주의자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대인과 시온 주의자의 차이는 19세기 후반 러시아에서 계속된 포그럼 등 유대인 박해는 유대인 사이에 세 가지 물결을 만들어내는데 첫째는 서방 등 미국으로의 이주 둘째는 국제 사회주의 운동 세 번째는 시오니즘이었습니다 시오니즘은 유대교 전통의 집안의 세속적인 대응인데 유대인의 고토인 팔레스타인에 국민 국가를 건설하자는 시오니즘은 유대민족주의라고 볼 수 있죠 시온이 있으면 프랑스 대혁명 이후 유로 휩쓴 민족주의의 산물이자 그에 대한 응전이었고 유대교도는 시온은언덕이 있는 예루살렘을 종교적 성지로 갈망했는데 시온은 세상의 종말 때 내려지는 구원이 실현되는 곳으로 세상의 종말 때 유대인의 집단적인 귀환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죠 모슬렘과 기독교도가 메카와 예루살렘에서 국가를 건설하려 하지 않듯이 유대교도도 팔레스타인에서 국가를 건설하려는 전통은 처음에는 없었습니다 시오니즘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은 19세기 후반 들어서였는데 시오니즘을 종교적 묵상이 아니라 행동으로 촉구하고 실천한 이는 유대교 랍비인 츠비 히어로슈 칼리셔였습니다 동프로이센의 정통파였던 그는 1862년 펴낸 "시온을 찾아서" 에서 이탈리아인 폴란드인 헝가리인의 예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자며 시온을 선택한 신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우리의 의무를 위해 우리가 얼마나 더 노력해야만 하는가라고 말했지요 그는 프랑스 파리의 유대인 국제자선단체인 '이스라엘 세계 연대'에 간청해서 1870년 팔레스타인 자파의 작은 유대인 농업 학교를 세우는데 재정 지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세속적 시오니즘의 문을 연 이는 모제스 헤스였는데 독일 본의 정통파 유대교도 집에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의 유대인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동지였던 헤스는 빈발하는 반유대주의, 이탈리아 민족주의 혁명과 주세페 마치니 시오니즘을 종교적 묵상에서 행동으로 옮긴 칼리셔 등의 영향으로 유대인 민족주의로 혁명적 선회를 했지요 뒤늦게 유대 역사에 심취한 헤스는 1862년 【로마와 예루살렘: 마지막 민족 문제】 서문에서 내 민족의 한 가운데 여기 다시 섰다며 유대인으로 돌아왔음을 선언했지요 그는 이스라엘의 땅을 유대인에게 귀환할 땅 다른 민족들의 땅에서 기생충이라는 정형화된 모습을 털어내 버릴 이상적인 지역으로 상정했고 황량하고 사람이 살지 않는 땅 위에서만 유대인의 노동은 올바른 사회주의 원칙 아래 조직이 가능하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나중에 시오니즘 교리의 원형이자 노동 시오니즘을 구체화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유대인과 시오니즘은 생각에 따라 분류가 되지만 뿌리는 같은 민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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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의 기원은 어떤 나라인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반도에는 고려 충렬왕 때 쿠빌라이 칸이 일본 원정을 목적으로 진출할 때 소주가 전해졌다고 합니다 특히 몽골의 주둔지이던 개성, 전진 기지가 있던 안동, 제주도에서 소주 제조법이 발달하였는데 고려사에 국민왕 때 경상도 원수 김진이 소주를 좋아하여 명기와 부하를 모아 소주도가 되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기록입니다 한국에서는 고려를 부마국으로 둔 몽골군에 의해 몽골군의 주둔지인 안동과 무역의 중심지였던 개성을 중심으로 소주가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그러나 그 당시 소주는 제조가 까다로운 증류주였기 때문에 값이 비싸 사치스러운 술로 부유층이 즐기던 술로 인식이 되었지요 일반 서민층 들에게는 약용으로만 쓰여져 약소주라고도 불렸고 소주의 종류는 여러가지였고 지금과는 달리 순수하게 곡식으로 빚어 맛이 좋았다고 합니다 소주의 기원은 13세기 고려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몽골 침략 당시 르반틴 증류법이 소개된 시기에 레반트 아나톨리아 페르시아 침략당시 아라크의 증류법을 터득한 위안 몽골인들이 도입한 것입니다 그 당시 수도였던 개경의 주변에 양조장이 설치되었고 개경의 주변 지역에서는 소주를 여전히 '아락주'라고 부릅니다. 한국 현대 소주의 직접적인 뿌리인 안동 소주는 이 시기 몽골군이 주둔하던 안동 지역에서 시작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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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나라도 없던적이 있는데 지금은 강대국이 됐는지?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스라엘의 역사를 알려면 성경을 읽어야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이스라엘이었고 이스라엘에 대한 모든 예언이 기록되어 있는 책이 성경이지요. 또한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이기 때문에 세계의 경제 문화등 비록 적은 인구지만 모든면에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성경에 기록된 모든것이 이루어졌는데 앞으로 예수님의 재림과 세계 3차대전만이 이루어지지 않아 조만간 성경의 모든 이야기가 이루어질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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