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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트 황제가 왜 로마제국의 초대황제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선 율리우스 카이사르 이전의 로마는 공화정 이었습니다공화정 이전에 왕정이던 시절은 있었는데그건 시골 촌구석의 왕이지 황제가 아닐 뿐더러,엄청 쓰레기 같은 왕이 나라 망하게 할 뻔 한적이 너무 많아서그냥 왕 없이 여럿이서 의논하면서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서 공화정을 했습니다.그후 나라가 너무 커지면서 강력한 통치자에 대한 필요성이 생겨서"종신독재관"이란 제도가 나타나긴 했지만.어디까지나 의회가 인정하는 능력자가 잠깐 독재한다는 개념이지 황제가 아니었어요.그래서 독재관이 죽거나 실수하면 바로 의회가 권력을 몰수했죠.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독재관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대단한 군력과 권력을 가져서반쯤 황제 취급을 받았지만, 너무 일찍 암살당해서 황제가 되진 못했습니다애초에 황제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기도 하구요그 후에 율리우스의 양자인 아우구스투스가 경쟁자를 모두 물리치고, 옆나라 이집트도 박살내고정말 라이벌이 하나도 없는 로마겸 지중해 제일의 존재가 되면서"왕처럼 혈연으로 물려받는, 평범한 왕보다 엄청 대단한 무언가"라는 개념이 처음 생겨나게 되었고그래서 후대 사람들은 아우구스투스를 로마 최초의 황제 로 취급하는 겁니다아우구스투스는 속마음은 어쟀던 자기는 그저 제1의 시민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독재자가 아닌척 행동했어요, 후대사람들이 저거 그냥 황제아님? 하고 나중에 황제로 올려치기 한거죠그리고 이건 사족이지만 시저는 카이사르를 영어식으로 읽은것입니다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풀네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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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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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에 소속된 노비, 기생들을 첩으로 들일 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관노는 현대인이 생각하는 공무원같은 느낌이 아니라그 관에 소속된 "비품"같은 존재였습니다. 말 그대로 물건취급이죠그러니 돈많은 양반이 남들이 욕하는거 감수하고 그 노비를 산다면얼마든지 첩이 될 수 있었습니다.물론 "할아버지가 역적" 처럼 범죄자 친척인걸 누구나 아는 상황이라면 욕정도로 멈추는게 아니라 진짜 사형당할 수도 있어서 그러지 않겠지만"아버지의 할아버지의 고조 할아버지가 역적" 같은 수준이라면 별문제 없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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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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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에서는 다른 국가로 넘어가서 사는게 자유로웠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정 반대 입니다국경은 커녕 자기네 마을에서 나가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에이민은 커녕 여행도 귀족들만 다닐 수 있었습니다.우선 그럴듯한 마을이면 모두 경비병이 있어서 출입 통제를 받았구요당연히 신분증같은건 없기 때문에 인맥이 있거나, 최소한 돈이라도 많아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또한 길은 100% 산길 흙길인데다가 경찰 비슷한 것도 없으니까언제 어디서 산적이 튀어 나올지 알수가 없으니 돌아다니려면 사람과 무기를 많이 준비해야 했고결정적으로, 대부분이 농노라는 노예계층 이었기 때문에옆집으로 이사하는 것조차 자기 맘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무조건 윗사람 허락을 받아야 했죠추가로 중세에는 중상주의라는게 유행했어요간단히 말하자면 "자기네는 물건 하나도 안사면서 남들은 내 물건 전부 사면 엄청 이득이다!"라는 사상이죠.물론 기본적 경제교육을 받는 현대인이 보면 이상한 논리지만 당시사람들은 이게 그럴듯 하다고 생각했고당시 귀족들은 "내물건"에 자기 영지의 사람들을 포함해서 생각했기 때문에옆 영지로 이사가는 것도 귀족에게 바칠 엄청난 돈과 화풀이를 막아줄 뒷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측량같은 지형을 측정하는 기술또한 없었기 때문에영지 사이의 경계선에 살거나 아직 개척되지 않은 땅에 숨어사는 화전민 같은 사람들은소속된 영지가 쉽게 바뀌기도 했습니다만, 이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배자가 바뀌는거라서질문자 분이 상상하는 자유로운 분위기랑은 완전 다를 겁니다.자유민 이라고 맘대로 돌아다닐수 있는 사람도 없진 않았지만이런 자유민은 돈많은 상인이나 차별받는 유대인 같은 경우에만 해당됩니다헌법같은 것도 없어서 영지 주인 맘대로 법이 정해지기 때문에욕심많은 영주 한테 들키면 슬쩍 노예로 처리당할 수도 있어서대부분 상인은 돈이 많아지면 한영지에 정착하기 마련이었고유대인이나 집시는 자기들이 어디 정착 하고싶어도 못해서 떠돌아 다니는 거라서국적을 맘대로 바꾸는게 아니라 국적 가지고 싶어도 못가지는 상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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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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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트리가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된건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크리스마스 트리에는 관련 전설이 있는데8세기 독일 지방에서 북유럽신앙으로 나무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야만적 풍습이 남아있을때영국 선교사 윈프리드가 아직 제물이 없는 전나무를 가리키면서 "이걸 집에 가져가 예수의 탄생이나 축복해라"라고 설교했다는 전설입니다.이 전설이 얼마나 사실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고대 북유럽 지방에서 겨울에도 푸릇한 전나무에 과일이나 생선등의 제물을 바치던풍습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며이것이 기독교 전파 후에 융합되서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었다고 합니다,즉, 예수랑은 별 상관 없습니다.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같은 기독교 풍습이 사실 이교문화 출신이란건 유명한 이야기죠. 상대방의 문화를 억지로 뿌리 뽑는 것 보다는 좋은게 좋은거라고그 지역 특징을 살려서 선교하는게 더 편하고 잘통하니까요.한국 기도회에서 가끔 "수능 합격하게 하시옵고 "하는 식으로 소원을 비는 것 또한굿판 벌이던 민속신앙이 기독교랑 합쳐진 거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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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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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왜 현재 발전하지 못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연구 매우 잘되고 있고 매년 논문도 잘 나오고 있습니다강인공지능 알고리즘이던 SGLT-2 억제제던 윙렛을 장비한 천음속익이던 뭐던어느 분야의 최신 기술은 일반인에겐 와닿지 못하는게 보통이에요당정 신기술이 튀어나와서 평가가 뒤집혀질 수도 있고, 어차피 관련도 없는 사람은볼 기회 조차 거의 없기 때문에 쉽게 설명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죠챗GPT를 민간인도 쓸수 있게 되고 나서 AI관련 서적이 엄청 많아 진 것처럼그 기술을 실제로 쓸수 있어야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기 마련입니다실제로 만져볼수 있는 물건도 이런 상황인데 눈에도 안보이는걸 다뤄야 하는심리학이나 종교학 같은건 얼마나 설명하기 힘들겠습니까?이런 정신적인 분야를 이해하기 위해선 배경지식을 쌓아야 하니그 시작점인 먼 옛날 이야기부터 공부해야 하고그렇기 때문에 의무교육 과정에선 옛날 이야기 밖에 못하는 겁니다.수학을 배우기 위해선 1+1부터 알아야 하는 것과 같죠그런데 심지어, 현대 학문에선 과거 철학의 일부던 많은 분야가윤리학, 정치학, 사회삭, 심리학, 언어학,미학 등등으로스스로 독립했기 때문에 순수하게 철학 그 자체라고 할수 있는 영역이 너무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어서 일반인에겐 잘 체감하기 힘들고철학이 저 모든것을 뜻하는 단어였던 고대의 철학이 훨씬 더 유명한거죠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도근대 쯤에 나왔으면 철학서로 분류 되었겠지만현대에는 윤리학이나 정치학 관련서로 분류되죠. 이런 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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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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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개는 어디지역에서 유래된 전통개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풍산개는 함경남도 풍산군(豊山郡)의 개이기 때문에 풍산개 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해당 지역이 지금은 북한땅이기 때문에 현재 남한에서는 잘 연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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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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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와 성탄절 같은뜻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크리스마스=그리스도Christus마스massa=그리스도(=예수님)+마스(=모임)=그리스도(의 탄생을)기념하기 위해 모이는 날성탄절=성스런 자의 탄생을 기념하는 절기=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성탄절은 크리스마스와 같은 뜻입니다. 번역과정에서 만들어진 단어죠석가탄신일 비슷하게기독탄신일 이라고 번역하는 시도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성탄절 쪽이더 간편해서 더 많이 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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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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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공룡이라는 존재를 아예 몰랐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화석은 전세계적으로 많이 발굴되었지만대부분은 거인이나 드래곤 같은 환상의 동물같은 거로 상상했습니다일단 뼈모양인거 보니까 시체인거 같긴 한데몇만년전 같은 긴 시간동안 남는 시체가 있다곤 생각도 못했으니이런 특이한 시체가 남는걸 보면 특이한 동물이겠다! 라고 생각한거죠특히 동양의학에선 아예 용골 이라고 약재의 일종으로 분류했으며동의보감에 용골은 정신이 좋아지게 하고 혼백을 안정시키며오장을 편하게 하는, 사기를 몰아내고 설사,이질,몽설,실혈,식은땀,잦은 오줌등의 증상에 효과가 있단 기록도 있습니다1800년대, 서구열강이 남아도는 자본을 바탕으로 당장은 쓸모없어 보여도 연구를 할 수있는 상태가 되서1841년에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오언이 Dinosauria 라는 단어를 만들기 전까진아예 공룡이란 단어 자체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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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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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월트 디즈니가 바로 만든 사람 이름입니다월트 디즈니의 회사=월트 디즈니 컴퍼니=디즈니 인거죠1901년 12월 5일 미국 시카고 출생의 월트 디즈니는 상상력이 뛰어나고 그림을 좋아했지만가난한 농민 가문이라서 정식 교육을 못받아 화가로 성공하진 못했습니다.생계를 위해 여러 일을 전전하던 디즈니는 세계 1차대전 후뉴욕에서 자작한 빨간모자 애니가 성공한 것을 계기로,비교적 새로운 시장인 애니메이션에선 자신도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 어브 아이웍스라는 애니메이터와 함깨동화를 소재로한 단편애니를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세운 회사인 래프 오 그램은뉴욕의 배급업체와 사기에 가까운 계약을 맺어 계약금 고작 100달러를 받고 회사가 도산했고,그후로 디즈니는 뉴스, 영화의 카메라맨으로 직업을 옮겼죠.카메라맨으로 경력을 쌓은 디즈니는 할리우드에서 영화감독 데뷔를 시도했지만 실패하고그냥 또 애니나 만들기로 해서 형과 함께 디즈니 브라더스 스튜디오를 세웠고움직임 그 자체보다는 감정선이나 디테일을 강조하는 특유의 애니메이션 기법이 크게 히트를 처서 성공합니다그후 유니버설 픽쳐스가 거지같은 계약으로 자기 캐릭터를 훔쳐가는 짓을 하자 복수심에 불타는 디즈니가혼신의 힘으로 만든 미키마우스가 미친듯이 대박을 터지며 회사가 점점 커지고,거기에 그치지 않고 회사가 망할 정도로 돈을 빌려서 만든"세계최초 풀컬러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가 진짜 말도안되게 성공한 후로직원만 1천명이 넘는 거대 스튜디오로 성장했습니다.그 후로는 돈을 끌어쓰는 버릇을 못버려서 적자경영으로 망할 뻔 했지만구조조정으로 근근히 버티면서 세계2차대전도 프로파간다 애니로 버티면서1950년 부터 신데렐라 같은 히트작을 다시 만들기 시작해 회사는 재기에 성공했습니다.다만 디즈니 본인은 디즈니랜드를 세우느라 바뻐서 이 시기에는 애니제작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이 디즈니랜드는 그냥 신기한 체험 모음집 수준이던 기존의 놀이공원을 하나의 테마를 갖춘 테마파크로발전시켰다고 평가를 받습니다.그 밖에도 서로 경쟁관계던 TV와 극장가를 연결해 영화 홍보용 TV시리즈 라는 새 시장을 개척하거나하나의 단일기업이 애니메이션,실사,다큐,테마파크,서적,굿즈 등등 다양한 장르를 총괄하는원소스 멀티유즈 개념을 확립하는등 여러가지 창의적인 시도를 많이 했었죠.그후로도 디즈니는 메리 포핀스 같은 실사영화에도 참여햇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가 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지만정글북을 제작하던 중 페암으로 쓰러졌고, 1966년 12월 1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창업자의 사망이후로 침체되던 회사 디즈니는 1980년대 이후 외부의 경영인을 초청해 내부구조를 쇄신해서영화 산업과 저작권으로 꿀을 빠는 현재의 거대기업 디즈니로 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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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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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인디언의 조상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모든 인류의 조상인 아프리카 원인들이죠.인류는 아프리카에서 동쪽으로 전진하면서 각 지역에 남은 부족들이 변화해서 지금의 인종이 된거고그렇기 때문에 아메리카 가기전에 제일 마지막에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이랑 분리된게 아시아인이라서"그나마"아시아인들이랑 비슷하단 거지 네이티브 아메리칸이 아시아인 그 자체인게 아닙니다.큰 눈과 높은 코, 깊은 안와상융기 같은 백인적 특징도 있고, 까무잡잡한 피부같은 흑인적 특징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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