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당시 한국이 정전협정에 불참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이승만 정부는 정전에 부정적이긴 하였으나, 정전 협정에 최종 불참하진 않았습니다. 한국군 대표로 최덕신 소장 등 한국의 대표단도 같이 참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인에 한국군이 없는건, 유엔군 소속으로 정전 협장을 참여하였기에 유엔군 대표가 사인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이승만 정부가 정전에 부정적이었으나, 이는 계산된 정치 행보로 해석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승만 정부의 방향 자체가 북진 통일을 강하게 주장하기도 하였고, 미군 포함 유엔군과 함께 한다면 이것이 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미 북한의 공격으로 시작된 6.25 전쟁이기에, 정전 이후에도 군사력이 약한 한국이 불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정전 협정을 참여하지 않으려고 함으로써 결론적으로는 방호조약을 체결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평가
응원하기
조선시대 중반에 소빙하기가 찾아온게 사실입니까?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소빙하기라 함은 평균 기온 자체가 0.5~1도 정도 떨어지는 기간을 소빙하기라고 합니다. 소빙하기의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학설이 있지만, 딱 이거다 라고 정해서 밝히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조선시대 후기에 소빙하기에 관련된 내용은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기록에서 기후 이상 현상이 많은 것을 토대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다만 직접적으로 소빙하기라 칭하진 않고, 지구 전체에서 비슷한 이상 기후가 발견되었기에 그 즈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위에 말한 것과 같이 지구 전체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기에, 전세계적으로 소빙하기의 이상 기후 현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유럽 농업생산량 저하와 대기근, 그로 인한 전쟁과 마녀사냥 등 소빙하기 이론에 입각한 연구가 다양하게 있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영화 쌍화점처럼 예전에 왕 중에서도 동성애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쌍화점으로 유명한 고려 공민왕을 제외하고, 고려 목종도 동성애를 한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목종의 경우 직접적으로 동성애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왕으로써, 그의 어머니였던 천추태후와 그녀의 내연관계인 김치양 사이에서 기를 못펴는 왕이었습니다. 왕으로써 통치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김치양과 천추태후에 의하여 목숨의 위협을 받기도 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이상성욕에 눈을 뜬 것으로 사려되는데, 특히 "유행간"이라는 아름다운 남자를 끼고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식적인 기록으로 "용양의 관계"를 맺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동성애를 뜻하는 말입니다. 유행간은 목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벼슬도 받고, 국정에도 참여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목종은 이후 강조에 의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4.0 (1)
응원하기
흥선대원군인 이하응이 원래 왕족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흥선대원군은 원래 왕족 태생이었으나, 왕위계승권이 아주 먼, 거의 없다 시피 한 왕족이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이 정조의 이복동생이었던 은신군의 양자가 되면서 직계 왕실과 가까운 종친까지 올라오게 됩니다. 고종 전대의 왕이었던 철종이 후사가 없이 죽게 되자, 당시 왕실 어른이었던 조대비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아들을 왕의 자리에 앉히게 되고 그 아들이 바로 고종입니다. 이후 왕의 아버지기에 대원군 칭호를 받게 됩니다.
5.0 (1)
응원하기
과거에 한문이 상형문자 즉 그림에서 또는 낙서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한자의 시작은 상형문자로 알려져 있고, 상형문자는 말 그대로 보이는 것에서 유래된 문자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한자라 부르는 이유도 중국의 본토 인들을 "한족"이라 불렀기에 그들이 쓰는 언어로 한자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한과 중국을 뜻하는 한은 서로 다릅니다.) 기록으로 남겨져 있는 최초의 한자 원형은 갑골문자로, 거북이 등껍질에 새겨놓았다고 해서 갑골문자라고 불렀습니다.애초에 중국에서 만든 문자이기 때문에, 중국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우리나라도 한자 문화권으로 같이 한자를 사용하지만, 현재 사용하는 문자는 한글이고 언어도 한국어로 문화권만 속해있지 별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4.0 (1)
응원하기
조선시대에는 오늘날 처럼 식사를 3번 하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공식적으로 공인하는 기록은 없지만, 옛 동서양에서는 일반 백성들은 하루 2끼를 먹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조석(朝夕)으로 아침 저녁만 먹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점심에 대한 기록이 나온건 태종실록에서 확인해볼 수 있는데, 점심(點心)의 뜻은 마음에 불을 붙이는 것(점화,點火)로 집중력이 떨어질 때 쯤 다시 마음을 밝게 할 수 있게 간단하게 먹는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은 보통 두끼를 먹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현재의 삼시세끼가 자리잡은건 20세기 이후로 보고 있으며, 노동자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먹는 양도 많아져 세끼씩 먹는게 보편화되어 삼시세끼가 통용되는 말로 정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예수님은 결혼을 했는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예수님은 결혼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으로 보았을 때 예수님이 결혼을 하였다는 기록도 없고, 당시에 예수님을 비방하던 사람들에게서 고자라는 욕설을 들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부인과 자녀도 없구요. 일부 의혹으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아내이다라는 설이 있는데, 이 설을 뒷받침 하는 근거는 없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어느기점으로 나뉘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춘주전국시대를 나누는 기준은, 보통은 진나라가 분열된 "삼가분진"을 기점으로 이야기 합니다. 이유는 당시 황제국으로 위치하고 있던 주나라의 권위때문입니다. 춘추시대에는 주나라의 황제국 권위가 막강했으며 그 주위의 제후국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졌다면 전국시대는 주나라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정권이 바뀌는, 이른바 역성혁명의 이야기가 주가 됩니다. 그리고 주나라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 진나라가 한,위,조로 분열된 삼가분진입니다. 주나라가 제후국을 통치하고 다스릴 능력이 없어졌기에, 제후국들이 주가되는 전국시대로 넘어갔다고 보고 있습니다.우리나라와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완벽하게 세 나라로 분리가 된 기원전 403년을 보고 있고, 중국에서는 삼가분진이 처음 촉발되었을 때의 군주인 주원왕이 즉위한 기원전 473년을 기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이 473년으로 보는건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당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구분에 편의를 위하여라는 설도 있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대한민국의 주적이라고 부르는 대상과 문제점의 질문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주적이라는 표현은 2004년 이후로 공식적으로 외교에선 사용하고 있진 않습니다. 대한민국 국군에서 정의하는 주적은 "북한 정권과 북한군"으로 국방 백서에 나와있습니다만, 이것도 주적으로 명시하진 않고 "적"으로 규정한 세력이 북한정권과 북한군만 나오기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현재 휴전 상황인 점과, 대한민국 헌법에 입각해서 북한 정권이 당연히 주된 적인 주적으로 불리는 것도 타당할 수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외교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고 생각됩니다. "주적"이라는 표현 자체가 상종하지도 못할, 우리의 최후의 적이라는 표현과 거의 비슷하다보니 외교적으로 아예 선을 긋고 시작하게 됩니다. 주적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주된 적"이른 뜻으로 결국 제 1의 적이라는 뜻과 같습니다. 하지만 외교적으로 보았을때, 평생 적도 없고 평생 친구도 없는게 현재 상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중국과 북한을 정말 싫어하지만, 외교적으로는 무조건적으로 배척할 수도 없는게 현실입니다. 미국이 우리의 우방이고 저도 개인적으로 힘을 합쳐야 될 때가 온다면 미국이라고 생각도 하지만, 국제 관계에서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도 모르는게 현실이구요.국제적으로 보았을 때 주적을 북한이다 라고 명시하는 것 자체가 외교 채널을 단절시키고, 괜한 공격거리를 만들기 때문에 정권 자체에서는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주적이 북한은 맞다고 생각하고, 주적을 다른 나라로 말하는 사람은 선호하지 않긴 합니다.
5.0 (1)
응원하기
의자왕은 어떤 평가가 합당한 백제의 왕일까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의자왕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많이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백제의 멸망을 막기 위해 힘을 쓴 왕이라는 평가와 백제를 멸망에 이르게 하였다는 평가가 공존하기 때문입니다.삼천궁녀 이야기와 같이 과하게 깎아내리려는 이야기를 제외하고 이야기 한다고 하였을 때, 왕권을 강화하고 대외 팽창을 하려고 노력하긴 하였지만 효과를 보기보다는 역풍을 맞은게 더 크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대당외교를 적대적으로 돌리면서 나당연합군이 형성되게 만든 점도 있고,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무리하게 좌평을 늘림으로써 귀족들에게 반감을 산 것도 있습니다.반대로 당시 백제인들에게는 평가가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백제 부흥운동이나 후에 후백제를 세운 견훤도 의자왕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목을 내세웠기에, 평가가 나빴던 왕이었으면 명목으로 내새우지도 않았을 것 이니까요.개인적인 평가로 보았을때, 명군과 암군으로 구분하기에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명군이라기엔 너무 잘한것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암군이라기엔 잘못한게 큰 것도 아니라서요. 그냥 평균의 왕이었고, 능력이 크지 않아 스러져가는 백제를 지켜내지 못한 왕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